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에 대한 6가지 해석

입력 2020-04-21 10:16
수정 2020-05-14 00:32
국제유가 지표 중 하나인 서부텍사스산중질류(WTI)의 5월물(선물) 가격이 간밤 역사상 처음으로 배럴 당 -38달러까지 떨어졌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선물 시장은 현지시간 기준 오후 6시(한국시간 다음날 오전 7시·서머타임 적용)에 개장해 다음날 오후 5시에 마감한다. 23시간동안 돌아가는 시장이다.



WTI 5월물은 현지시간 20일 오후 4시께 배럴 당 -38달러로 저점을 찍은 후 소폭 반등했다. 21일 개장 시초가는 -14달러였고, 이후 소폭 플러스로 전환했다. 5월물 거래는 21일로 마감되며 앞으로 한 달은 6월물이 기준이 된다.

상당수 투자자들은 웃돈을 주고 6월물로 갈아탔다. 6월물의 이날 시초가는 베럴 당 21.3달러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 왜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돈을 줘가면서 원유를 팔까

일부 생산자들에게는 돈을 주고 파는 게 생산을 중단하거나 창고를 새로 찾는 것보다 더 쌀 수도 있다. 웃돈을 주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다른 방안은 장기적으로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현물을 사들일 의도 없이 가격 상승에 베팅한 트레이더들도 있다. 이들은 원유를 쌓아둘 창고도 없다. 글로벌 석유 수요가 줄어들면서 원유 저장고를 빌리는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2. 공급 과잉은 어디서 시작됐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가격 전쟁 중 하나만 벌어졌어도 에너지 시장은 출렁였을 것이다. 그 두 이벤트가 함께 벌어지면서 충격이 배가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미국 등이 경제활동을 최소화한 가운데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기존 감산 협정을 깼다. 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가 시장에 풀렸다.

3. 새로운 감산 협정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러시아, 미국, 주요 20개국(G20)이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전체 생산량의 10%를 감축하는 합의는 수요 감소에 비해 너무 적었고 너무 늦었다.

와이오밍 등 미국 내륙의 셰일오일 생산지는 저장 창고가 거의 없어 먼저 마이너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뉴욕상품거래소로 이어졌다.

4. 선물은 현물과 무슨 관계인가

선물은 구매자가 미리 정해진 시점(만기)에 정해진 가격으로 현물을 사는 계약이다. 선물 거래는 유가 변동에 대응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투자(또는 투기)의 도구이기도 하다.

WTI 5월물(5월 인도분)의 만기는 4월21일이었다. 만기가 다가오자 선물 매수자들은 큰 압박을 받았다. 결국 마이너스에 파는 게 기름을 쌓아놓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투자자들까지 나왔다.

5. 창고 현황은

WTI의 핵심 허브인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원유 비축량은 5500만배럴로 2월말 이후 1.5배 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 허브의 저장 용량은 지난해 9월말 기준 7600만배럴이었다. 곧 동날 것이란 게 시장의 예측이다.

업계에서는 바다에 떠있는 빈 유조선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도를 찾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 채굴업자들에게 이미 파놓은 땅에 원유를 임시로 보관하도록 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6. 소비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미국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1갤런(3.79리터) 당 1.81달러로 1년 전보다 1달러 이상 떨어졌다. 원유 선물 가격 하락이 실물 휘발유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몇 주 걸린다. 휘발유 가격에는 세금도 상당히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 하락은 크지 않을 것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