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60일 사투…'방역 한류' 중심은 대구였다

입력 2020-04-21 15:35
수정 2020-04-21 15:48

대구가 ‘방역 한류’의 중심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습으로 유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대구 의료계와 시민들이 똘똘 뭉치고 전국 의료진과 구급대원, 국민의 아낌없는 지원과 연대 속에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세계가 놀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외신은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대구시민의 성숙한 대응에 놀랐고 두 번째는 대구 민관 의료계가 사태 초기 3~12일 동안 보여준 비상대응 능력, 폭증하는 환자 속에서도 대구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창의적 대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종교단체라는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집단발병(outbreak)이 발생하자 권영진 대구시장은 감염내과, 예방의학과 교수를 자문단으로 한 대구시 비상대응자문단을 즉각 구성했다. 이들은 매일 비상대응본부 회의를 자정 넘어서까지 열며 코로나19 전투를 이끌었다. 비상대응자문단 회의는 대통령과 총리가 대구를 방문하고 정부가 본격적인 관심을 표명한 2월 25일, 중앙대책본부가 코로나19 지침을 바꿔 중증과 경증환자의 분리 수용, 중증환자 전원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2월 29일까지 대한민국 코로나 전투의 실질적 컨트롤타워였다.


월도미터(worldometer)의 세계 각국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지난 20일 현재 확진 환자 수는 한국이 1만674명인 반면 미국은 76만 명, 이탈리아는 17만여 명이다. 사망자는 미국이 4만565명, 이탈리아는 2만3660명, 한국은 236명이다. 100만 명당 사망자는 미국이 123명, 이탈리아 391명, 한국은 5명이다.

한국보다 늦게 대유행을 맞이한 많은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 대규모 확진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강제 입국 제한과 이동 제한을 하지 않은 국가와 도시 가운데 빠르게 사태를 안정시킨 대구에 세계의 많은 의료전문가와 외신들이 비결을 물어오는 이유다.

대구는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52일 만인 지난 10일과 17일 추가 확진자 ‘0’을 기록했다. 최초 확진자 발생 이후 12일 만인 2월 29일 하루 추가 확진자 수 741명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다.

확진자 증가세를 누르면서 사망 피해를 최소화한 비결, 이 과정에서 대구 의료계가 내놓은 세계 최초 시도들에 외신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대책본부장은 “대구의 하루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로 내려간 3월 중순 이후 하버드대 연구소를 비롯해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의료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독일 슈피겔 등 많은 외신이 대구의 대응 비결을 물어왔다”고 말했다.

3일 만에 신천지 신도 9336명 조사, 1243명 격리


대구시 비상대응본부와 의료진은 신천지 신도 9336명에 대한 대대적인 전화조사를 19일부터 21일 밤 12시까지 3일 만에 끝내고 유증상자 1243명을 가려냈다. 대구시 시민안전실 등 5개국 공무원 100여 명이 신도 1인당 2~3통의 전화로 고위험군을 신속히 분리해 보건소로 통보하고 자가격리 조치했다.

세계가 대구의 대응에 놀라움과 존경을 표시하게 한 첫 단추는 바로 집단감염의 근거지를 일찌감치 찾아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하루 사망자가 799명에 달한 미국 뉴욕은 외딴섬인 하트섬에 코로나19 사망자를 집단 매장해 세계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탈리아 베르가모시 역시 화장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군용트럭이 인근 지역으로 사망자를 실어나르는 안타까운 모습을 연출했다.

김신우 대구시감염병관리지원단장은 “유증상자 가운데 초기 확진율이 80%대까지 높았던 신천지 신도들을 초기에 신속히 지역사회와 분리하지 않았다면 대구도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고의 위기에서 세계 최초를 만들어

지난 19일 오전 8시.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등 5개 상급종합병원장과 대구시의사회, 대구시간호사회 등 메디시티대구협의회 대표단이 권 시장과 함께 브리핑장에 섰다. 대구 의료계가 결집된 힘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구가 코로나19 대응에서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대구시 비상대응본부 자문단과 메디시티대구협의회 덕분이다. 2015년 메르스 때 대구는 이들의 협력으로 훌륭히 대처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210쪽에 달하는 메르스 백서를 통해 단계별 대응전략과 매뉴얼도 이미 갖춰 놓았다.

권 시장은 “2015년 메르스 때 숙식을 같이하며 질병관리본부보다 강화된 대응을 하면서 다져진 민관의 협력과 신뢰가 있었다”며 “11년간 고락을 함께하며 대구 의료 수준을 높여온 메디시티대구협의회가 있었기에 대구는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집단발병의 온상이 된 신천지 클러스터의 예봉을 꺾은 대구는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지난 2월 23일부터 100여 명씩 불어나는 환자를 치료할 병원과 병상이 부족했다. 당시 정부의 지침은 확진 환자는 병원 입원 치료가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대구의 의료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대구에도 올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나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대구의 대응능력을 넘어서는 확진자 폭증에도 메디시티 대구 구성원들은 놀라운 집중력과 창의력으로 대응했다. 신천지 신도 9336명에 대한 3일 만의 전화조사와 격리조치, 이어진 전수조사, 하루 최고 6000여 건의 대량 검체 채취를 가능하게 했던 드라이브 스루도 한몫했다. 공중보건의의 이동 검진, 쏟아지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해 자가대기 중 희생당하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고안해낸 화상전화 모니터링, 김신우 경북대 교수(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장)가 개발한 비대면 환자 중

도 진단법, 경증환자와 무증상 환자를 격리하기 위해 만든 격리시설인 생활치료센터, 5일 만에 124개의 음압기와 303개의 병상을 만들어낸 국군대구병원 등 대구는 최고의 위기 속에서 수많은 ‘세계 최초’를 만들어냈다.

11년간 다져진 ‘메디시티 대구’의 저력

하지만 대구의 이런 빠른 초기 대응이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이 대혼란을 겪고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한국보다는 외신이 먼저 대구의 대응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방역 한류’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은 “외국 언론이 소개하고 있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구형 방역모델”이라며 “해외로부터의 감염원 차단이라는 1단계 방역, 국내에서 사회적 감염을 막는 2단계 방역에 정부가 실패했지만 의료진의 집단지성과 헌신, 대구 시민정신이 제3단계 방역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이면서 대구 방역모델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고 분석했다.

김종연 대구시감염병관리지원 부단장은 “해외 입국을 제한한 대만이나 홍콩 등 아시아 국가를 제외하고 대구는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기에 안정화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대구의 코로나19 대응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의 대학병원마다 대구가 세계 최초로 시도한 많은 대응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막아 대한민국 지키겠다”


대구는 유사 이래 가장 큰 재난을 당했지만 의연한 시민정신과 전 국민의 연대와 배려로 위기를 극복했다. 대구시민들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른바 ‘대탈출’ 없이 ‘자발적 봉쇄’를 선택했다. 코로나19를 대구에서 막아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시민정신과 의료진의 분투 속에 대구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대구 청년상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의료진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고 시민들은 마스크를 나눴다. 전국 의료진은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의 눈물겨운 호소에 생업을 접고 달려왔다. 교육도 채 마치지 않은 공중보건의와 간호장교들이 대구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대구가 위기를 맞고 대한민국이 고통을 당했지만 코로나19와 싸우는 동안 국민은 단결했고 더 강해졌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은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용감하게 싸워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기업들, 빵과 도시락, 마스크를 보내준 국민들을 가슴에 새기며 경제 회생에 다시 하나가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