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미국·유럽과 중국 간 갈등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사태 초기에 전염병의 명칭, 불량 의료용품 등에 관한 신경전 수준이던 것이 이제는 각국 정부와 언론, 연구기관 등이 총출동해 책임 소재와 배상문제를 놓고 전면전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이는 전 세계 확진자(20일 기준) 240만4555명, 사망자 16만5038명의 엄청난 피해를 안긴 이번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국제 질서가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말 언론 브리핑에서 다시금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 가능성을 파악하고도 일부러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됐고,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감염자들이 속출한 곳에서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등 대중(對中)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럽에서도 ‘중국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는 지난 17일 게재한 편집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의 기사에서 “당신, 당신 정부와 과학자들은 코로나가 사람 간에 전염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알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희생자 가족들에게 한번쯤 설명해야 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외교 싱크탱크인 헨리잭슨학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주요 7개국(G7)에 입힌 손해만 3조9600억달러(약 4815조원)에 달하며, 중국은 이를 물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유럽의 날선 공격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는 한편 코로나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을 강조하며 수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 사망자수가 중국의 25배, 유럽연합(EU)은 10배에 달하는 게 현실이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제 타격도 치명적이다. 코로나19 쇼크로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5.9%, EU는 -7.1%로 추락할 것이란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과 유럽이 국민의 ‘반(反)중국 정서’를 달래가며 책임 및 배상문제를 그대로 덮고 넘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이 문제를 정식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 긴장과 갈등은 미·중 무역전쟁을 뛰어넘어 “경제 제재와 수출통제·불매운동이 난무하는 ‘신(新)냉전’이 올 수 있다”(미국 정치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코로나발(發) 신냉전이 현실화한다면 한국으로서는 다시 한번 외교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서방과 중국 사이에 끼여 “누구 편이냐”는 택일을 강요받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의 관계증진에 큰 비중을 둬온 정부·여당이 총선 압승을 계기로 그런 기조를 더 강화할 경우 자칫 미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 재편의 풍랑 속에서 오직 국익만 바라보며 실리외교에 주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