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빠른 초기대응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데는 종횡무진 활약한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사진)의 역할이 컸다. 그는 대구에서 최초의 확진자가 나온 지난 2월 18일부터 병원 일을 접고 60여 일간 대구시의사회와 메디시티대구협의회, 전국의 민간 병원과 군병원, 의료진을 연결하는 데 그가 가진 모든 경험과 자산을 쏟아부었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외신 20여 개를 포함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코로나19 상황과 대구의 대응을 국민과 세계인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의료진만 잘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대구와 경북에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결집시키기 위해서였다.
그의 카카오톡에는 2월 18일 이후 새로 생긴 단톡방 10여 개가 있다. 대구시 비상대응자문단 핵심 교수 9명, 5개 상급종합병원장 등 10개 병원장, 메디시티대구협의회, 대구지역병원 책임보직자 단톡방 등이다. 그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60여 일간의 급박한 상황과 초동대처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만큼 대구는 절박했다. 이 기록들만 모아도 코로나19의 대구 백서가 만들어질 정도다.
민 본부장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마련, 의료자원(병원 병상) 수급, 의료인력(군의관, 간호장교, 공중보건의) 수급과 관련한 많은 아이디어를 2월 18일 밤부터 꾸려진 대구시 비상대응자문단 회의에서 쏟아냈다.
그는 확진자가 분명히 크게 늘 것이며 그렇게 되면 치료할 병상과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미리 하고 큰 그림을 그렸다. 민 본부장이 코로나19 사태에 이렇게 빨리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군의관 출신인 그가 메디시티협의회 의료관광산업위원장으로서 그동안 중국 및 해외 의료진과 다진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중국 의료진으로부터 일찌감치 정보를 입수하고 사태 추이를 예견했다.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계명대 동산의료원과 국군대구·대전병원이었다. 그는 김권배 계명대 동산의료원장, 국군대구·대전병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24개 병실(98병상)만 운영하던 국군대구병원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닷새 만에 음압병상 303개를 만들었다. 당시 대구에 가용한 음압병상은 30여 개에 불과하던 때였다. 이 같은 기민한 대응은 입원할 병원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자가격리 중 병세가 악화된 많은 환자를 구해냈다.
그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독일의 슈피겔, 러시아의 국영방송 등 많은 외신과 인터뷰를 했다. 이탈리아 출신 미국 의사, 미 육군, 하버드대 연구소 등 해외 각국 의료진과도 코로나19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 등 의학적 질문도 많았지만 대구에서 폭증하던 확진자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줄일 수 있었느냐가 핵심이었다. 의료자원 동원, 대량 진단검사가 가능한 이유, 드라이브스루 검사와 이동검진 등 대구가 최초로 개발한 ‘대구형 방역모델’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그가 열심히 대구를 홍보한 덕에 방역한류의 출발지는 대구라는 사실을 세계 언론에 분명히 알릴 수 있었다.
민 본부장은 “대구가 큰 고통을 겪었지만 성숙한 시민정신과 전국 의료진의 헌신, 민관이 하나 된 발 빠른 대응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희생자를 최소화하고 이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제2의 대유행을 막고 일상을 되찾아 대구에 해외 의료관광객이 다시 몰려드는 날을 맞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