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올해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아무런 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까지 현실화하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6월 30일까지 연장 여부 결정해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6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비상 시국에 노딜 브렉시트까지 추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도 어려운데 더 힘들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말까지로 예정된 브렉시트 전환(준비)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국은 지난 1월 31일 유럽연합(EU) 집행부 및 산하기구에서 모두 탈퇴했다. 이른바 정치·외교적 브렉시트다. 경제적 브렉시트는 연말 이뤄진다. 영국은 올 12월 31일까지만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한다. 이때까지가 전환기간이란 의미다.
전환기간 동안 영국과 EU는 자유무역협정(FTA) 등 새로운 협정을 맺는다는 계획이다. 이 전환기간은 양측이 합의하면 한 차례에 한해 최장 2년 연장할 수 있다. 올 6월 30일까지가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한이다.
다만 남은 기간 동안 영국이 EU와 FTA를 맺거나 협상 시한을 연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협상 항목 자체가 워낙 많은 데다 영국의 의지도 크지 않아서다. 더욱이 EU 측 미셸 바르니에 협상 수석대표가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양측 협상이 한 달가량 중단됐다.
영국 정부는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전환기간 연장 요청 직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방침을 내놨다. 영국 측 협상 대표인 데이비드 프로스트 브렉시트 수석보좌관은 “우리는 연장을 요청하지 않겠다”며 “EU가 거듭 요청해도 안 된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 의견 차이가 좁혀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영국이 유럽 시장에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려면 브렉시트 이후에도 종전 EU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게 EU 요구다. 영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규정을 준수할 거라면 애당초 EU 단일시장에 잔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전환기간 내 FTA 타결에 실패하더라도 EU 관세동맹 및 단일시장에서 무조건 탈퇴하겠다는 것이 영국 정부 계획이다.
노딜 시 내년부터 관세 10% 부과
연말까지 FTA를 타결 짓지 않은 채 영국이 EU 관세동맹 등에서 탈퇴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는다. 영국은 EU산 물품을 수입할 때 WTO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은 무관세가 가능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10% 관세가 부과된다. 관세 부담에 따라 교역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IMF는 지난 14일 ‘세계 경제 전망’에서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7.5%로 급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6.5%로 내다봤다. 영국 예산책임처는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지속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12.8%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봤다. 현실화하면 1709년 이후 311년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IMF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가 반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노딜 브렉시트가 실제로 발생하면 유럽 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18년 말 영국은행은 노딜 브렉시트가 닥치면 영국 GDP가 8%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도 타격을 입는 건 마찬가지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영국의 총수출 중 EU가 차지한 비중은 45.3%다. 총수입 중 EU 비중은 52.6%에 이른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