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장하나(28·BC카드)는 요즘 “이상하게 바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대회는 중단된 지 오래인데 할 일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것 같아서다. 언제 투어가 재개될지 알 수 없으니 골프 연습과 몸 만들기는 일상이 됐다. 방송 출연, 인터뷰 일정도 빼곡하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된 게 SNS용 영상 제작이다. 그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6000여 명인 ‘골프 인플루언서’. 얼마 전 후원사인 LPGA골프웨어의 홍보 영상을 CF처럼 제작해 올렸는데 기획부터 촬영, 출연, 편집까지 1인 4역을 했다.
지난 15일 경기 성남 남서울CC에서 만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투어가 중단돼 스폰서들이 브랜드 노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후원을 끊지 않은 스폰서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이런 장하나의 ‘의리파’ 기질을 ‘롱런’의 비결로 연결짓고는 한다. 올해로 투어 11년차인 그는 2014년 BC카드와 계약을 맺은 뒤 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골프팬의 뇌리 속엔 어느덧 ‘장하나=BC카드’라는 이미지가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장하나는 “프로 선수는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사가 ‘장하나’라는 브랜드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성적뿐만 아니라 성적 외적으로도 책임감을 갖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KLPGA투어 12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5승을 합해 총 17승을 거뒀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시드를 잃은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하다. 천재적인 재능에 지독한 노력이 덧붙여진 결과물이다. 아무리 바빠도 ‘복근 운동 100회 3세트, 스쿼트 100회 3세트’로 정해 놓은 하루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갈수록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요샌 스트레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대회 실전 감각은 라운드로 유지한다. 장하나는 “신인 선수들이 대회가 열릴 예정인 골프장들을 돌아다니며 연습을 한다고 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며 “익숙한 코스가 대부분이지만 핀 위치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곳이 골프코스다. 일부러 캐디와 함께 골프장을 돌아다니며 실전처럼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상금으로만 11억5772만원을 모은 장하나의 올해 목표는 누적상금 50억원 돌파다. KLPGA에 따르면 장하나는 12승을 올리는 동안 41억2941만원을 모아 투어 역대 상금 1위에 올라 있다. 이 부문 2위 고진영(24·30억7068만원)에게 10억원 넘게 앞서 있다. 2015년 미국 무대에 진출해 2년간 7개 대회를 소화하는 데 그쳤지만, 그 가운데서도 2승을 수확할 정도로 빠르게 상금을 쌓았다. 장하나는 “사실 역대 상금 1위에 오른 것도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하지만 의미 있는 기록이다. 선수로서 한국여자골프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은퇴하는 것도 개인적으론 뜻깊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로 투어가 멈춰 있지만 다음달 KLPGA챔피언십으로 투어가 재개되는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시즌 재개 전 목표는 ‘뜻깊은 일에 더 많이 기여하는 것’이다. 2017년 1억원, 지난해 1억원을 ‘장애 청년’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한 장하나는 올해 후배들을 돕는 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프로골프투어) 김비오 선수가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사용하던 용품을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며 “이와 비슷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열심히 연습하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남=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