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주 장기 보유가 '동학개미운동' 승리 요건

입력 2020-04-17 17:07
수정 2020-04-18 01:53
처음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두 번째엔 ‘사람들이 좀 이상하네’라는 표정을 짓고 만다. 하지만 세 번째 사람마저 엘리베이터에 타서 문을 등지고 서면 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도 천천히 뒤로 돌아선다. 유튜브에서 ‘엘리베이터 실험’이란 검색어로 찾아볼 수 있는 흑백 영상이 있다. 엘리베이터에 탄 주인공은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문을 등지고 서거나,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돌아선다. 주인공은 사회적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을 그대로 따라 한다.

‘동학개미운동’은 엘리베이터 실험과 겹쳐진다. 최근 증시 급락을 저가 매수 기회라고 판단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있다. 2001년 9·11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통해 ‘위기=기회’라는 학습효과가 생겨서다. 현금 확보가 급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한국 주식을 팔아치워 증시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꿋꿋이 ‘사자’에 나서는 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을 등진 사람들과 닮았다. 떨어지는 주식을 사는 ‘역발상 투자’라는 말처럼 일반적으론 이상해 보인다.

이런 이상한 개미(개인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증시를 떠받치는 역할까지 해내자 ‘동학개미운동’이란 유행어까지 등장했다. 외국인과 맞선다는 점에서 반외세의 대명사인 ‘동학’이, 많은 개미가 같은 대의명분을 위해 힘을 쓴다는 점에서 ‘개미운동’과 합성됐다. 여느 운동처럼 동학개미운동도 소수의 리더 그룹과 다수의 추종자 그룹으로 나뉜다. 리더 그룹은 걱정의 대상이 아니다.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갖춰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듯 동학개미운동에 쉽게 가담한 추종자 그룹이 걱정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추종자들의 문제로 수익에 대한 조급증을 지적한다. 이런 지적을 확대적용하면 단기간에 짭짤한 수익을 보려는 심리가 이번 운동의 최대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단기 고수익을 실현한다면 다행이지만 서두르다 낭패를 보고 그걸 만회하려 더 무리한 투자를 감행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에 대해 과거와 달리 주식 투자를 공부한 개미들이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는 건전한 투자를 하는 만큼 동학개미운동이 승리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우량주를 저가 매수해서 장기 보유함으로써 수익을 추구하는 개미가 실제로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두 번째 걱정 대상은 동학개미운동을 지켜본 대다수 국민이다. 겁이 나서, 투자경험이 없어서, 투자할 돈이 부족해서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상황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질 수 있어서다. 시간이 흐른 뒤 동학개미운동 성적표가 신통치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사람들은 “역시 주식은 위험해”라며 금융투자에 담을 쌓을지도 모른다.

원금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금융투자에 신중한 자세는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아예 금융투자 자체를 무시해선 곤란하다. 인생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면 주식, 펀드 같은 금융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금리는 제로(0) 수준이고, 막대한 유동성이 풀려 다음 국면엔 자산가치 급등세가 예견되는 상황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자산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이런 때 위험회피 심리만 강해져선 자산 형성의 적절한 기회를 살릴 수 없다.

투자는 시간을 사는 것이란 원칙을 유념하고 우량주를 저가에 분할 매수한 후 장기 보유함으로써 100세 시대를 살아갈 노후 자금을 착실히 준비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합리적 투자자가 돼야 은퇴를 잘할 수 있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