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가 슬픈 생각을 떠올리며 흘린 눈물을 여기 주전자에 모아 눈물 차를 끓여 마셔요. 그럼 슬픔이 조금 사라진다는 이야기에요.”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하 ‘날찾아’)에서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승호(한창민)가 들려준 ‘집에 있는 부엉이’ 속 ‘눈물 차’ 이야기다. “그럼 우리도 눈물 차를 끓여 마셔볼까”라던 심명여(문정희)의 제안에 일제히 주전자 안에 저마다의 슬픔을 부어 넣었다.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그들의 빛바랜 슬픔이 누그러지길 바랐다.
목해원(박민영) 가족의 슬픔은 모두 한 가지에서 뻗어 나온다. 바로 너무나도 다정해보였던 아빠 주홍(서태화)의 숨겨진 본성이다. 한없이 다정다감해보였던 남편이자 아빠인 주홍은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밀려올 때면, 아내 명주(진희경)의 몸에 손을 댔다. 이성을 차린 후 죽을 죄를 지었노라고 손이 닳게 빌어도 그때뿐, 활화산 같은 분노는 쉬지 않고 터졌다. 명주는 그렇게 실체를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지옥 속에서 매일을 버터 내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분노를 멈춘 건 괴물 같은 형부의 모습에 겁에 질린 명여(문정희)가 그를 향해 액셀을 밟으면서부터다. 끔찍했던 폭력의 사슬은 끊어졌지만, 순식간에 검붉은 피로 물든 마당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을 말하고 있었다. 분노와 함께 주홍의 숨도 멎어버렸기 때문. 피비린내가 저릿한 공기가 그들의 숨에 섞여 들어오는 순간, 명주는 아찔해져왔다. 자신이 아는 명여는 “언니 난 다 하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나 다 할 거야”라는 자신감에 넘칠 정도로 당차고 똑똑한 동생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로 인해 모든 게 산산조각 날 지경이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누구보다 찬란히 빛났던 동생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액셀을 밟은 사람은 자신이어야만 했다. 명여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언니의 슬프고도 간절한 바람이었다.
결국 과실치사로 7년 형을 선고받은 명주는 명여에게 “책도 쓰고 연애도 하면서 최대한 열심히 살아”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니 버텨내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마음 약한 동생은 언니의 부탁을 차마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기엔 그날의 검붉은 피가 자신의 심장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있었고, 결코 잊을 수 없던 피비린내는 그 심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했다. 글에 대한 열정도, 불타오르던 사랑도 모두. 형부를 죽이고 언니에게 대신 죄수복을 입힌 자신은 결단코 행복을 누리면 안됐다.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이 막중한 그 죄책감은 사실 단 한 순간도 빛났던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명여를 극심한 비통에 잠기게 만들었다.
명주와 명여 자매에 의해 철저하게 감춰진 그날의 진실을 꿈에도 몰랐던 해원의 마음에도 켜켜이 묵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 명주는 아빠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점점 더 차가워졌고, 누구보다 뜨겁게 살던 이모 명여는 “뭘 하려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돼버렸다. 변해버린 이 상황에 대해 누구 하나 나서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각자의 슬픔과 상처를 돌보느라 어쩌면 아빠의 죽음으로 가장 상처 받았을지도 모르는 해원을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추운 냉동고 서랍 한구석에 방치된 해원은 나름대로의 오해와 서러움도 층층이 쌓여가기만 했다.
각자만의 슬픔에 잠겨있던 그들은 이제야 서서히 서로의 슬픔을 바라봐 주기 시작했다. 명주는 단 하루도 잘 살지 못한 명여의 슬픔을 알게 되었고, 해원은 10년 전 그 일에서 비롯된 두 자매의 슬픔을 알게 되었다. “첫 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차를 만들면 지난밤의 슬픔이 누그러지리라”라고 호두하우스 거실에 떡 하니 걸려 있는 팻말처럼 이들 가족은 앞으로 남은 2회에서 차 한 잔과도 같은 따뜻한 서로의 온기로 저마다의 슬픔을 껴안아줄 수 있을까. 진정한 가족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한편 ‘날찾아’는 매주 월, 화 오후 9시 30분 방송된다.
신지원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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