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진단기기 대박 보라…규제 풀어 고부가 新산업 키워야"

입력 2020-04-16 17:22
수정 2020-10-15 18:29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사진)이 15일(현지시간) 한국 등 아시아 경제에 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사라져도 V자 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내년에 3%대 반등을 해도 ‘기술적 반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로 한국산 바이러스 진단기기가 ‘대박’을 친 것처럼 규제를 풀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쳐 2014년 2월부터 IMF 최고 실무직인 아·태국장을 맡고 있다.

이 국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IMF 춘계미팅, 아·태국 브리핑에 맞춰 한국경제신문과 전화·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IMF가 내놓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 -1.2%에 대해 “선방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지난해 2.9%→올해 -3.0%)와 선진국(1.7%→-6.1%)에 비해 한국은 하향 조정폭(2.0%→-1.2%)이 작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한국은 특정 지역 외엔 부분 봉쇄(lockdown)를 통해 경제활동을 일부 허용했지만 미국과 유럽 대부분 국가는 경제활동을 전면 제한한 결과”라고 했다.

IMF가 내년에 한국 3.4%, 중국 9.2% 등 아시아 경제가 반등할 것으로 전망한 데 대해선 “기술적 반등이지 트렌드로 올라가는 건 아니다”고 했다. “한국, 중국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가 내년에 IMF 전망치만큼 성장해도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위기 전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IMF의 이번 전망은 바이러스 확산이 올 2분기 정점에 이르고, 3분기부터 경제회복이 시작될 것이란 가정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바이러스가 미국, 유럽에서 다른 지역으로 퍼지거나 ‘2차 감염’이 확산되면 IMF 전망보다 상황이 나빠질 수 있는 만큼 V자 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국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과 달리 지금은 선진국 성장률이 크게 둔화돼 한국의 수출이 부진할 것”이라며 “중국도 그때처럼 아시아를 구출해줄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2009년엔 한국의 주요 수출 대상국이 평균 1.7% 성장했지만 올해는 -2.5% 성장이 예상된다고 했다. 중국도 2009년엔 GDP의 8%에 달하는 추가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지만 이번엔 지금까지 푼 돈이 GDP의 2.5%뿐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중국은 2009년 과도한 부양책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너무 잘 알게 돼 이번엔 부양책을 펴는 데 소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일에 대해선 “1단계는 메디컬(방역) 측면, 2단계는 공급망 붕괴를 막는 것, 3단계는 총수요 진작을 위한 경기회복”이라며 “지금은 2단계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론 “2단계는 유동성 위기가 파산 위기로 확산되는 상황을 막는 것”이라며 “봉쇄 조치로 현금 수입이 크게 줄어 단기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생긴 기업과 자영업자, 가계가 파산하지 않도록 이들의 채무 상환을 유예하고 임금을 보전해 고용 유지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 국장은 “지금은 전쟁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평소 경제 지식을 바탕으로 평범한 경제정책만 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과거에 쓰지 않았던 ‘비전통적 정책’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비전통적 정책을 쓸 땐 “출구정책을 명확히 하며 한시적으로, 지원 대상을 타기팅하고, 손실 부담을 어떻게 할지 투명하게”라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국제 금융시장 상황과 관련해선 "국가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신흥국에선 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며 “선진국들이 위기 대처 과정에서 대규모 국채 발행에 나서면 신용등급이 낮은 신흥국들은 자금 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외환보유액도 많고 미국 중앙은행(Fed)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어 이런 우려에서 벗어나 있지만 계속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외에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위험으론 많은 가계부채를 꼽았다. 이 국장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돈을 빌린 가계뿐 아니라 금융기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론 규제를 풀어 첨단 고부가 서비스업과 새 산업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이번에 의료규제를 완화해 ‘마음껏 뛰라’고 하니 진단기기 사업이 대박 났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가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하는데 재택근무에 필요한 원격회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기업은 왜 찾을 수 없느냐”며 “각종 규제로 소프트웨어 시장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잘했던 산업만 해서 고용을 유지하려고 하면 한국은 세계 경제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영원한 벤처주식’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인터뷰 전문>
▶IMF가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2%로 전망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주요국 전망치가 큰 폭 하락한 것에 비해선 선방한 편이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지난해 2.9%보다 6%포인트 정도 하락한 수치다. 선진국 성장률은 작년 1.7%에서 올해 -6.1%로 낮아지고, 미국은 2.3%에서 -5.9%로 떨어질 걸로 보고 있다. "

▶IMF가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한국과 다른 나라의 봉쇄(lockdown) 정책 차이를 봐야 한다. 한국은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부분 봉쇄를 통해 경제 활동을 일부 허용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 대부분 국가는 경제 활동을 전면 제한하고 있다. 위기가 정점에 가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지금 같은 전면 봉쇄가 지속되면 한 달에 국내총생산(GDP)이 3%씩 떨어질 걸로 예상된다. "

▶코로나19가 사라지면 한국과 아시아 경제가 'V자 회복'을 할까.
"V자 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 우선 이번 사태는 순수 경제위기와 달리 예측이 어렵다. 백신이 얼마나 빨리 개발되느냐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달라질 거다. 게다가 IMF의 이번 전망은 바이러스 확산이 올 2분기 정점에 이르고 3분기부터 경제가 회복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만약 바이러스가 미국, 유럽에서 다른 지역으로 더 퍼지거나 ‘2차 감염’이 확산되면 지금 전망보다 상황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

▶한국이 바이러스 차단에 성공해도 경제 성장이 더딜까.
"그렇게 보는 이유가 두가지 더 있다. 첫째, 선진국 성장률이 크게 둔화돼 수출이 매우 부진할거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 대상국의 올해 평균 성장률은 -2.5%로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엔 이 수치가 1.7%였다.
둘째, 중국 경제의 둔화다. 올해 중국 성장률을 1.2%로 보는데, 2009년엔 9.4%였다. 중국은 2009년에 GDP의 8%에 달하는 추가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기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실물경제 자체가 바이러스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은 2009년 과도한 부양책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너무 잘 알게돼 이번엔 부양책에 소극적이다. 지금까지 중국이 발표한 재정정책 규모는 GDP의 2.5% 정도다. 2009년처럼 아시아를 구출해줄 상황이 아니다. "

▶IMF가 내년에 한국 3.4%, 중국 9.2% 성장을 예상한건 V자 회복을 한다는 의미 아닌가.
"기술적 반등이지 이전 트렌드로 올라가는게 아니다. 한국이나 중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내년에 IMF 전망치만큼 성장해도 2021년 실질 GDP는 위기 전 전망치보다 낮은 수준이다. "

▶이번 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 정부는 뭘 해야하나.
"위기의 원인과 전개 상황이 기존 경제위기와 다른 만큼 적극적 정책이 요구된다. 규모 뿐 아니라 정책 순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단계별 맞춤 정책이 필요하다.
1단계는 방역에 집중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는거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 한 부분이다. 2단계는 유동성 위기가 파산 위기로 확산되는걸 막는거다. 봉쇄 조치로 현금 수입이 크게 줄어 단기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생긴 기업이나 자영업자, 가계가 파산하지 않도록 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채무 상환을 유예하고 임금을 보전해 고용 유지를 돕는 정책이 시급하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3단계에선 바이러스 확산이 억제되고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서면 전통적 재정·통화정책를 통한 총수요 진작으로 경기회복 속도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2단계 조치가 필요하다. "

▶코로나19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전 세계가 돈을 쏟아붇는 건 어떻게 보나.
"지금은 누가 봐도 전쟁이 터진 거나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라는 적군과 싸움을 하는 거다. 평소 경제 지식을 가지고 평범한 정책만 해선 안된다. 정책의 규모뿐 아니라 제도 측면에서도 과거와 다른 '비전통적(unconventional) 정책'이 불가피하다는걸 인정하되 사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걸 함께 고려해야 한다. "

▶비전통적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현금 지원이나, 재정지출 규모를 대폭 늘리는 것, 중앙은행이 직·간접적으로 회사채 리스크를 지는 것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비전통적 정책을 쓸 땐 첫째, 한시적으로 해야하고 사전에 출구정책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지원 대상을 타기팅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 미국은 기축통화를 갖고 있으니 여러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책 여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한다. 셋째, 향후 손실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지가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이 명확해져 부실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

▶전 세계적인 '돈풀기'가 국제 금융시장엔 어떤 영향을 줄까.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당분간 국제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날 거다. 하지만 선진국 금리가 내려가더라도 개발도상국의 국제금융 상황이 호전될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회피 성향이 커져 신용 리스크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국채나 우량 회사채 금리는 크게 떨어졌지만 투자등급 미만 회사채 금리는 크게 올랐다. 국가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신흥국에선 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위기 대처 과정에서 대규모 국채 발행에 나서면 신용도가 낮은 신흥국들든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은 외환보유액도 많고 미국 중앙은행(Fed)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어 이런 우려에서 벗어나 있지만 계속 주의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외에 한국 경제가 직면한 최대 위험은.
"가계부채가 걱정이다. 많은 가계부채 때문에, 경기 둔화가 상당기간 지속되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돈을 빌린 가계뿐 아니라 금융기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을 동원해 기업의 파산을 막고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나중에 더 큰 비용지급을 막는 좋은 투자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제 주체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중앙은행의 손실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해 지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할 지 모른다."

▶중장기적으론 어떤 문제를 봐야 하나.
"우리가 이번 사태로 교훈을 얻어야할게 있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져 대기업, 수출 제조업체가 흔들리면 음식점, 소매업, 숙박업 등은 다같이 어려워 진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구조를 만들려면 규제를 풀어 첨단 고부가가치 서비스업과 새 산업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이러스 진단기기 수출이 좋은 예다. 이번에 사태가 급박해져 의료 규제를 완화해 '마음껏 뛰라'고 하니 진단기기 사업이 대박이 났다. 반면 우리가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하는데 재택근무에 필요한 원격회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왜 찾을 수 없나. 그동안 각종 규제로 소프트웨어 시장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잘했던 산업만해서 고용을 유지하려하고 신산업 등장 때 기존 산업의 손실만 걱정한다면, 한국은 세계경제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영원한 벤처주식'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