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무너지는 듯했던 지역주의 장벽은 다시 공고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미래통합당은 영남에서 사실상 ‘싹쓸이’에 성공했다. 여야 모두 외연 확장보단 지지층 결집에 골몰한 결과다. 호남 정당을 자처했던 옛 민주평화당(현 민생당)은 전멸했다. 정의당은 호남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지역주의 투표는 또 정치권 거물을 줄줄이 여의도 외곽으로 밀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낙동강 벨트 수성한 통합당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1대 총선에서 대구·경북(TK) 지역은 25석 중 24석을 통합당이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0시30분 기준). 나머지 한 석은 통합당에서 탈당한 홍준표 무소속 후보(대구 수성을)가 36.9%로 1위를 달리고 있다.
4년 전 대구에서 2석(김부겸·홍의락 의원)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TK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김부겸 의원은 38.7%의 득표율을 기록해 60.3%인 주호영 통합당 의원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대구 북구을에 출마한 홍의락 의원 역시 32.8%를 얻는 데 그쳤다. 1위는 62.6%의 김승수 통합당 후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는 이날 선거에서 보수층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부겸 의원이 출마한 수성구의 투표율은 72.8%로 전국 투표율(66.2%)보다 6.6%포인트 높았다.
4년 전 낙동강 벨트 남쪽 지역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민주당은 이번에 의석수가 줄었다. 부산·울산·경남(PK) 지역 40석 가운데 6석을 차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33석을 가져갔다. 나머지 한 석 역시 통합당을 탈당한 김태호 후보가 앞서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PK 지역에서 8석을 차지했다. 보수층의 통합당 쏠림 현상은 농촌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경북 김천의 송언석 통합당 의원은 75.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경북 군위 의성 청송 영덕의 김희국 후보도 79.3%를 기록했다.
PK 지역에서 여당을 이끌었던 김영춘 민주당 의원 역시 보수층 결집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 의원은 44.5%를 득표해 49.4%의 서병수 통합당 의원에게 뒤졌다. 김부겸·김영춘 의원은 총선 승리를 발판 삼아 대권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통합당이 두 의원을 대상으로 ‘자객 공천’을 했고, 이 전략이 보수 지지층의 결집으로 이어져 승패를 갈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선거 막판 통합당의 읍소 전략이 PK와 TK를 중심으로 한 보수 지지층에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생당 전멸한 호남
민주당은 총 28석이 걸린 호남에서 한 곳을 제외하고 전원 당선이 예상된다. 나머지 한 석은 민주당 출신인 이용호 무소속 후보(전북 남원 임실 순창)가 당선을 확정지었다.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녹색돌풍’에 밀려 호남 28석 중 23석을 내주고 3석을 지키는 데 그쳤다. 특히 의석이 하나도 없었던 광주에서 8석을 모두 가져갔다. 전남에서도 10석을 석권했다.
호남에서도 거물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우선 호남 정당을 자처했던 민주평화당 출신 의원(현 민생당)은 전멸했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39.4%를 얻어 김원이 민주당 후보(45.0%)에게 뒤지고 있다. 박 의원은 4년 전 “민주당과 문재인 당시 대표가 호남을 버렸다”는 프레임으로 국민의당 돌풍을 이끌었다. 국회 부의장 출신인 박주선 민생당 의원은 광주 동구남구을에서 10%대 득표율(10.2%)에 그치고 있다. 6선인 천정배 민생당 의원은 양향자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호남지역에서 분 ‘국민의당·안철수 심판론’이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했다”며 “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선언한 김관영·이용주 무소속 후보 역시 심판 대상에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2석을 차지했던 통합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한 명의 후보도 10% 이상 지지율을 올리지 못했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과 정운천 통합당 의원은 호남을 떠났다. 정치권에선 이번 총선에서 여야가 정책 이슈보다 진영 대결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이슈 등에서도 차별화된 정책보다는 ‘퍼주기’ 대결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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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