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합의에도 폭락한 원유 가격…트럼프 "2000만 배럴 감산" 진실은

입력 2020-04-15 16:25
수정 2020-04-15 16:27
[04월 15일(16:25) '모바일한경'에 게재된 기사입니다]모바일한경 기사 더보기 ▶



(선한결 국제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관계자 등에서 세계 원유 일평균 2000만 배럴 감산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이 나온 뒤에도 원유 선물시장에서 유가는 속절없이 내리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 등의 주장과는 달리 OPEC 13개국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10개국 모임(OPEC+)의 감산량이 실제로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시장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입니다. 왜인지 알아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자신의 트윗에 “OPEC+이 예상하는 감산 규모는 일평균 2000만 배럴”이라며 “대부분 언론이 보도한 하루 1000만 배럴 규모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앞서 OPEC+ 관계자 일부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을 통해 했던 주장입니다. OPEC 좌장 격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도 같은 얘기를 했고요.

하지만 원유시장 반응은 차갑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직후 유가가 배럴당 1달러 가량 잠깐 올랐지만 곧 하락했습니다. 14일 선물시장에선 유가가 거의 10% 폭락했습니다. CNBC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가격은 이날 장중 19.95달러까지 내렸다가 20달러 초반에 거래됐습니다. 주요 외신들은 WTI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20달러로 보고 있습니다.

15일에도 유가는 약세를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우리시간 오후 4시10분 기준 WTI유는 배럴당 20.11달러에 거래돼 간신히 2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브렌트유는 29.12달러에 손바뀜되고 있습니다. 이날 WTI 가격은 사우디와 러시아 등 간 감산 합의가 난항을 겪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던 지난달 30일 수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왕자 등은 감산 규모가 하루 200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 유가는 왜 오르지 못하고 있을까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2000만 배럴이라는 수치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일단 OPEC+와 주요 소속국 등이 공식화한 5~6월 감산량은 일평균 총 1200만 배럴입니다. OPEC+는 합의를 통해 총 1000만 배럴을 감산합니다. 에너지정보업체 에너지 인텔리전스 등에 따르면 OPEC+ 합의에 따라 사우디가 250만8000배럴, 러시아가 250만8000배럴을 각각 줄여 생산합니다. 이라크는 106만1000배럴, 아랍에미리트(UAE)는 72만2000배럴, 쿠웨이트는 64만1000배럴을 줄입니다.

여기다 사우디, UAE, 쿠웨이트 등 3개국이 OPEC+ 합의와는 별도로 총 200만 배럴을 더 감산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감산안만으로 유가를 안정시키기엔 충분치 않다고 본 것으로 풀이됩니다. 각 국이 공식 확인한 감산량은 여기까지만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800만 배럴은 어디서 나온 수치일까요. OPEC+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OPEC+ 등은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브라질 등 비OPEC+ 주요 산유국의 감산량이 하루 350만~370만 배럴 가량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각국과 국제기구 등이 전략비축유를 매입해 시장 공급을 줄여 감산 효과를 낼 것으로 봤다고 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하루 200만 배럴 가량 원유 재고를 사들일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반면 전문가들은 이런 기대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일단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은 고정 할당량을 낀 의무 감산안에 동참하겠다고 확언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 현지에선 아예 특정 감산안을 시행하는게 사실상 불법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CNBC는 “미국엔 전국 에너지 공급 향방을 결정하는 당국이 없고, 각 기업이 감산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며 “만약 에너지기업들이 특정 감산안을 시행하게 되면 반독점법에 걸릴 소지가 충분해 문제가 매우 까다롭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정부 등은 시장 가격이 낮아지면 각 기업이 자연스럽게 감산에 나설 것이라고 보지만, 기업들의 얘기는 다릅니다. 한 미국 에너지기업 관계자는 CNBC에 “미국엔 에너지기업이 9000개 가량 있다”며 “이중 영세 기업 다수는 당장 현금 흐름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에 공급을 줄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에너지기업은 자금난이 워낙 심각하다보니 전체 시장 유가 안정을 고려할 겨를이 없고, 일단 원유나 석유제품을 되는대로 팔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IEA 등의 원유 재고 매입도 감산 수치로 치기엔 확실치 않은 점이 많습니다. 매입 시점도, 기간도 불분명합니다. OPEC+ 관계자는 WSJ에 “IEA가 수개월 내에 원유 재고를 사들일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하네요.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 애스펙츠의 암리타 센 원유부문 수석애널리스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일평균 2000만 배럴이라는 수치는 중복 계산과 뭉뚱그리기 등 각종 ‘창의적인 회계법’을 통해 짜맞춘 수치”라고 지적했습니다.

OPEC+등의 감산 효과를 놓고 비관론이 퍼지는 와중에 미국 원유재고는 계속 쌓여가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14일 미국 석유협회(API)는 지난주 미국 원유재고량이 일주일간 1314만3000배럴 쌓였다고 추산했습니다. 오일프라이스닷컴 등에 따르면 이는 시장 예상보다 150만 배럴 가량 많은 수치입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오늘 공식 원유재고량을 발표하는데요. 이 수치도 유가에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지난주엔 EIA의 재고량 수치가 API 수치를 밑돌았는데요. 이번주엔 유가시장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끝)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