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하면 대출 원금이나 이자 상환을 면제받는 일명 ‘일자리지킴대출’이 도입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업 대란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미국식의 새로운 대출상품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14일 “미국이 최근 시행하고 있는 ‘급여보호프로그램(PPP)’처럼 일자리를 지킨 기업에 대출 원금, 이자 상환 면제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부처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으며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3일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들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책을 검토해 과감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업 대란 막으려면 파격 지원 필요”
정부가 벤치마킹하려는 PPP는 미국이 지난 5일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직원 수 500인 미만 기업에 한 달 인건비의 2.5배를 1000만달러 한도로 빌려준다. 금리는 연 1%다. 이 제도가 미국에서도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고용을 유지하면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다. 기업이 8주간 직원 수를 유지하고 대출금의 75%를 급여 등으로 지급하면, 급여·임차료·공공요금·주택담보대출 이자 상환 등에 사용한 대출금은 상환을 면제해준다. 대출금을 고용 유지 용도로만 썼다면 100% 면제도 가능하다. 은행이 기업으로부터 대출금을 상환받지 못하면 정부가 대신 상환해주고, 정부가 갖고 있는 대출채권은 미 중앙은행(Fed)이 사들이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보다 재정 여력이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원 대상을 500인 미만보다 좁히고 고용 유지 기간은 8주보다 늘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학계에서도 미국식 대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병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고용정책 모색’ 보고서에서 “재난 상황에서는 고용 유지 인센티브를 관대하게 높여도 좋다”며 “PPP와 같은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대출에 고용유지 혜택 부여도 검토
‘한국형 PPP’를 도입하는 데 최대 걸림돌은 재원이다. 대출금 중 상당액이 상환 면제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커질 은행의 손실을 정부가 대신 메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 때문에 3490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미국보다 지원 대상을 좁힐 계획이지만 그래도 수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벌써 두 번이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정부로서는 추가로 수조원이 드는 사업을 신설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PPP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대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산업은행 등 정책기관이 운영 중인 대출 프로그램에 고용 유지에 따른 인센티브를 추가하는 방안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인센티브로는 이자 감면, 대출금 상환 유예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은 한국형 PPP를 신설하는 것보다 기업에 대한 혜택은 적지만 국가 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각 방안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해 일자리지킴대출 도입 방식을 확정한 뒤 다음주께 발표할 계획이다.
박지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과감한 고용 정책을 강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집행률이 약 10%에 그치는 고용유지지원금 등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노력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