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이 시행 중인 봉쇄조치에 대한 단계적 완화방침을 내놨다. 노약자들에 대한 격리는 당분간 유지하고, 술집과 음식점 등 상점은 제한된 시간에만 운영하도록 했다. 일부 국가들이 부활절 연휴가 끝나는 14일부터 개별적으로 봉쇄조치를 일부 완화하는 가운데 EU 차원에서 일관된 ‘코로나19 출구전략‘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EU 집행위원회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코로나19 출구를 향한 유럽 로드맵’으로 이름붙여진 이 문건은 지난 12일 EU 회원국들에게 전해졌다. EU 집행위는 이 문건을 토대로 이번주 중 코로나19 봉쇄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기준과 내용을 담은 출구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
4쪽으로 구성된 이번 문건은 EU 차원의 통일된 봉쇄조치 완화지침이 필요하다는 27개 회원국 정상들의 요청에 따라 작성됐다. FT에 따르면 EU는 회원국들이 봉쇄조치 완화방침을 발표하기에 앞서 집행위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앞서 오스트리와와 덴마크, 체코 등 일부 국가들은 EU와의 사전 협의 없이 봉쇄조치를 일부 완화했다. 스페인도 지난 13일부터 경제활동 제한 조치를 일부 해제했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봉쇄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
EU는 봉쇄조치가 특정 지역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지더라도 일단 완화되면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증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을 충분히 갖췄는지 여부가 봉쇄조치 완화를 결정할 수 있는 핵심 기준이라고 조언했다.
EU는 노약자 및 의심증상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선 의무격리 기간을 더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집과 음식점 등은 점진적으로 개장하되, 당분간 제한된 시간에만 문을 열도록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이날 독일 일간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노약자들은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올 연말까지 격리돼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노약자들보다 더 일찍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격리가 어려운 일이고 부담인 건 알지만 생사의 문제인 만큼 인내심을 유지해야 한다”며 “백신이 없으면 노약자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신 개발은 EU 연구소에서 올 연말까지 개발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U는 외국인 입국을 금지한 조치는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EU는 “외부 국경통제 해제는 EU 차원에서 조정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우선 EU 내부의 국경제한이 완화돼야 한다”고 문건에 명시했다.
EU가 회원국 요청에 따라 봉쇄조치 완화지침을 마련한 건 더 이상 경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에서 외출금지령과 사업장 폐쇄 등 봉쇄조치가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경제활동이 완전히 중단됐기 때문이다.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가 우려되는 가운데 봉쇄조치가 계속되면 잇단 경기부양 대책으로도 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하루 사망자가 여전히 수천명씩 발생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봉쇄조치 해제가 코로나19 확산세를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봉쇄조치 완화조치가 전문가들로부터 큰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며 “아직까지도 매일 수천명 가량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봉쇄조치를 완화한 건 이르다는 비판이 많다”고 지적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