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9번째 디폴트 위기…G20 "가난한 신흥국 상환유예 추진"

입력 2020-04-13 17:26
수정 2020-04-14 01:08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난주 만기된 100억달러 규모 지방채 상환을 늦추자 국제 금융계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제때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디폴트)’ 선언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이 나라로선 역대 아홉 번째가 된다.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이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자 주요 20개국(G20) 등 채권국이 대출 상환을 6개월 이상 유예해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신흥국 디폴트 선언 잇따르나

신흥국에선 경제 위기가 순식간에 확산할 수 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않고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도 탄탄하지 않은 탓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신흥국으로 분류된 58개국에서 1000억달러 이상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민간 채권단에 지고 있는 외채(830억달러)를 지난달 말까지 갚겠다고 약속했다가 또다시 연기했다. 부채상환 협상에 참여했던 한 참석자는 “아르헨티나가 투자자와의 협의 없이 디폴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며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내년 4월 만기가 돌아오는 아르헨티나 국채 가격은 지난 한 달간 45% 급락했다. 이 나라의 순외환보유액은 12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를 반영해 무디스는 최근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두 단계 낮춰 ‘Ca’로 책정했다. 최하위인 ‘C’보다 한 계단 높은 자리다.

이탈리아와 함께 코로나 환자가 급증했던 스페인도 불안한 모습이다. 유니크레딧은행 연구소는 12일(현지시간) “스페인의 올해 경제 성장률이 작년 대비 -15.5%로, 유럽에서 가장 나쁜 성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봉쇄 조치 이후 스페인에서만 80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터키 역시 조만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순외환보유액이 275억달러에 불과해서다. 1년 내 터키가 갚아야 할 대외 부채는 총 1720억달러로 추산된다.

G20 “신흥국 부채 최소 6개월 유예”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G20 회원국이 신흥국 부채를 일제히 유예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FT가 이날 보도했다. 유예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내년 말까지다. 15일 화상 회의로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앞서 IMF와 세계은행은 지난달 공동 성명에서 “가난한 76개 국가의 채무 상환을 미뤄 달라”고 촉구했다.

다만 이 정도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올해 신흥국에서 이탈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금만 216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게 IIF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IMF가 감당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최신호에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지 않고 미 국채 보유량도 적은 신흥국들은 IMF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위기 대응을 위해 IMF는 최소 2조5000억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IMF의 대출 여력은 1조달러 정도다.

올해 신흥국 성장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IIF에 따르면 아르헨티나(-5.7%) 브라질(-4.1%) 멕시코(-5.8%) 러시아(-5.1%) 등의 성장률이 큰 폭 추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 브루킹스연구소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중국 인도 등 일부 신흥국이 고성장하며 세계 경제를 방어했으나 지금은 전 세계 경제에 면역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에드워드 글로소프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에서 연쇄적으로 채무 불이행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