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밋 "진짜 디지털 인프라가 깔린다"

입력 2020-04-12 17:46
수정 2020-04-13 01:39
“마침내 진짜 디지털 인프라가 깔릴 것이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사진)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코로나19 이후의 삶’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전례 없는 전염병이 원격의료와 온라인 수업의 수요를 크게 끌어올릴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람들은 의료와 정보기술(IT) 부문에서의 인프라 확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보건 부문 투자를 계속 줄였고, 이는 글로벌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10%대의 치명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2017년 기준 이탈리아 3.2개, 스페인 3개로 한국(12.3개)은 물론 독일(8.0개) 프랑스(6.0개)에도 한참 못 미친다.

다른 의료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정부는 인공호흡기 등 생명유지장비의 보급 현황과 유통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홍역을 치렀다. 독일에서조차 주별 확진자 현황을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시스템이 없어서 팩스로 취합하다 며칠씩 통계가 늦게 나올 정도였다.

미국에선 코로나19가 원격의료를 본격 활용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의료 인력들이 주(州) 면허와 관계없이 미국 전역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워싱턴주 프로비던스병원의 에이미 컴튼-필립스 최고임상책임자는 “코로나19 감염자 중 상당수는 원격의료를 통해 집에서 진료를 받으면 되기 때문에 병원에선 중증 환자를 더 집중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격교육의 필요성과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원격교육은 이론적으로는 학생들을 수업시간 일률적으로 교실에 앉혀놓는 방식의 교육보다 더 다양한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면 이런 장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각국은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디지털 인프라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적극적으로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세 차례에 걸친 경기부양책 중 1·2차를 코로나19 치료에, 3차를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또 인프라 재건에 초점을 맞춘 2조달러 규모의 4차 부양책을 준비 중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적극적이다. 공공 시스템 개선, 병원 수용량 증설, 원격근무·온라인학습·원격진료에 필요한 통신망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프라 투자 중심의 4차 경기부양책이 이르면 이달 말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도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살리는 방안으로 ‘신(新)인프라 투자 확대’를 공식화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데이터센터 건설 등이 핵심이다.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 중국 3대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과 3사가 출자한 통신 인프라 건설업체 차이나타워는 올해 총 1973억위안(약 34조원)을 5G망 구축 사업에 투자키로 했다. 작년 투자액의 네 배에 달한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소속 연구기관인 중국통신원은 중국이 2025년까지 5G망 구축에 1조2000억위안(약 208조원)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5G 네트워크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다양한 차세대 산업에 두루 영향을 끼칠 핵심 인프라라는 점에서 중국 당국이 신인프라 가운데서도 핵심으로 꼽았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AI, 스마트시티, 교육, 의료, 보건 등 분야도 신인프라 투자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AI산업에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유로(약 27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주요 영역으로 보건의료·교통·보안·고용·법률시스템 5개 부문을 꼽았다. 미국과 중국의 선제적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