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에게 렘데시비르를 썼더니 환자 상태가 나아졌다. 이들은 렘데시비르를 사용한 환자 중 극히 일부다.”
대니얼 오데이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 대표는 10일(현지시간) 공개서한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하던 주사제다. 길리어드는 바이러스 활동성을 억제한다는 데에 착안해 이 약을 코로나19 환자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이번 공개서한은 세계적 학술지인 NEJM에 실린 렘데시비르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길리어드에서 지원한 첫 번째 공식 연구 결과다.
길리어드, 1주일 새 CEO 편지만 두 차례
미국·유럽 등에서 이뤄진 해당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 53명 중 36명의 증상이 개선됐다. 입원치료를 받던 환자 중 25명이 퇴원했다. 인공호흡기와 에크모(인공심폐기) 등을 사용하던 위중한 환자 34명으로 좁혀보면 이들 중 8명이 퇴원했고, 8명은 산소치료도 받지 않게 되는 등 19명의 증상이 개선됐다. 연구팀은 렘데시비르 효과에 대해 제한적이지만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렘데시비르는 세계 첫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중증환자 사망률이 17~78%인 것을 고려하면 렘데시비르 치료에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계도 있다. 특정한 의약품 효능을 평가하려면 해당 약으로 치료한 환자군과 치료하지 않고 가짜약을 투여한 환자군을 비교해야 한다.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어떤 약으로 치료했는지 몰라야 한다. 심리적 효과(플라시보) 등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무작위 비교·대조군 연구라고 한다.
이번에 발표된 것은 당장 치료제가 없는 환자에게 일단 투여한 뒤 경과를 본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가 렘데시비르로 인해 증상이 나아진 것인지, 약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인지 등은 확인하기 어렵다. 연구에 참여한 조너선 그레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더시나이메디컬센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작은 규모의 코호트(동일집단) 연구인 데다 짧은 기간만 추적한 것 등의 한계가 있다”며 “무작위 대조군 시험을 통해 (효과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임상설계 변경 두고 설왕설래
오데이 대표가 공개서한을 발표한 것은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다. 지난 4일에는 렘데시비르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했다. 올 연말까지 100만 회분 투여량을 추가 생산해 재고량을 250만 회분까지 높일 계획이다. 치료제를 쓰지 못하는 환자에게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 “길리어드가 자신감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불과 5일 뒤에 ‘불확실’로 바뀌었다. 9일 길리어드가 렘데시비르 임상 설계를 바꾸면서다. 길리어드는 렘데시비르 임상3상 시험 대상자를 1000명에서 4000명으로 늘리고 환자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데 쓰이는 기준도 바꿨다.
렘데시비르 임상 대상 중 중증환자 비율은 40%에서 60%로 확대됐다. 중간 정도 환자는 60%에서 40%로 줄었다. 약효를 확인하는 기준도 체온과 산소 포화도 등 임상수치 대신 환자 임상상태를 점수로 평가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약효가 생각보다 없을 것”이라는 주장과 “중증환자 치료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해석이 팽팽히 갈렸다. 업계 관계자는 “속도가 가장 빠른 임상은 중국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주춤해지면서 양질의 연구 결과를 내기 어려워졌을 여지가 있다”며 “임상 종료 시점이 오는 5월로 바뀌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더 많은 환자에게 투약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데이 대표는 가장 빠른 허가용 임상(무작위 대조군 시험연구) 결과가 이달 말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5월에는 한국이 참여한 다국가 연구 결과도 나온다. 이달 말에서 다음달 초 사이에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제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렘데시비르 원가는 9달러, 판매가는 미정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성과가 하나둘 발표되면서 이들의 가격을 평가하는 논문도 발표됐다. 10일 바이러스퇴치 학술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렘데시비르 10일분 원가는 9달러다. 길리어드는 아직 이 약의 가격을 발표하지 않았다.
국산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산 치료제 중 정식 임상시험 절차에 들어간 것은 아직 없다. 셀트리온은 7월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돕기 위해 민·관 합동 범정부지원단을 가동하기로 했다. 청와대 사회수석을 중심으로 관계 비서관실이 참여하는 별도 협의체를 구성해 매주 진행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