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수출절벽…국내 공장 줄줄이 멈춘다

입력 2020-04-12 17:27
수정 2020-10-14 18:41

기아자동차가 국내 공장 세 곳을 1주일간 멈춰세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마비되면서 자동차를 팔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도 생산라인 하나를 멈추기로 했다. 현대·기아차가 해외 수요 부진을 이유로 국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산업이 ‘수출 절벽’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차는 소하1공장과 소하2공장, 광주2공장을 오는 23~29일 가동 중단하자고 지난 10일 노동조합에 제안했다. 회사는 노조에 “이달에만 공장별로 약 5000대씩 공급이 넘칠 전망”이라며 “해외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어 차량을 생산해도 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광명시에 있는 소하1공장은 카니발과 스팅어, K9을 생산한다. 소하2공장은 프라이드와 스토닉을, 광주2공장은 스포티지와 쏘울을 제조한다. 대부분 수출 비중이 높은 모델이다.

이번 휴업으로 기아차의 생산량은 약 2만 대 줄어들 전망이다. 이들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약 40만 대다. 기아차의 국내 생산량(연간 약 160만 대)의 25% 수준이다.

현대차는 투싼을 생산하는 울산5공장 2라인의 가동을 13~17일 중단한다. 한국GM과 르노삼성도 해외시장 의존도가 절반이 넘어 휴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 다른 제조업의 수출 규모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의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량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20% 넘게 줄었다. 포스코 등 철강회사들은 감산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정부는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쏟아지는 주문 취소…美·유럽 車딜러 "영업 중단하니 그만 보내라"

“주문을 취소해달라는 문의만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완성차업체 A사 해외판매 담당 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 훨씬 상황이 나쁘다”며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시장이 멈춘 탓이다. 하루 단위로 집계하는 수출실적은 이달 들어 10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난 것으로 집계됐다.

문 닫는 해외 딜러점

한국 제조업의 버팀목인 자동차의 수출길이 막혔다. 미국과 유럽, 중남미, 인도 등 주요 시장은 한꺼번에 마비됐다. 미국 자동차 딜러점은 80% 넘게 영업을 중단하거나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 국가 정부는 자동차 판매점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인도는 아예 주민의 외출을 제한하고 있다. 중남미와 중동 등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주요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뚝 떨어졌다. 미국에서는 전년 동월 대비 약 40% 줄었다. 프랑스(-72%)와 이탈리아(-86%), 스페인(-69%) 등 유럽 국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유럽자동차협회(ACEA)는 “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국내 완성차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국내 완성차 5사의 해외 판매는 44만6801대로 전년 동기 대비 20.9% 줄었다. 국내 업체의 해외 현지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해외생산 물량이 급감한 데다 수요도 줄어든 결과다.

진짜 위기는 이번달부터다. 대부분의 해외 공장이 아직 가동을 재개하지 못한 데다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에 내다파는 수출도 급감할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부 해외 거래처는 계약 물량을 보내도 이미 쌓인 재고로 더 이상 보관할 장소가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자동차 판매가 중단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글로벌 자동차 수요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4월 미국 자동차 수요는 지난해 같은달 대비 80%가량 떨어질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한동안 수요회복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최대 18%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일부 국내 공장을 멈춰 세우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월 20% 이상 휴업해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부품사가 많다”며 “기아차는 부품사의 자금 사정을 고려해 라인 운영 속도를 늦춰 감산하는 대신 휴업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3월 자동차산업 동향’을 발표하면서 “지난달까지는 주문받은 물량이 있어 코로나19의 영향이 제한적이었지만, 4월 이후 수출은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품 없어 공장 또 닫을 위기

지난 2월에 이어 부품이 부족해 국내 완성차 공장이 멈추는 일이 재발할 수도 있다. 지난달부터 미국과 유럽에 있는 자동차 부품공장들은 가동을 중단했다. 국내 완성차업체가 유럽과 미국에서 수입하는 부품의 양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이 전자장비 등 첨단제품이어서 대체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단순 조립 부품(와이어링 하니스) 하나가 없어 국내 전 완성차 공장이 1~3주간 문을 닫았던 것을 감안하면 유럽산 부품 재고 부족은 더 큰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쌍용자동차는 부품 재고 부족을 이유로 이달 초부터 1주일에 1~2일 라인 일부를 세우는 순환휴업에 들어갔다. 유럽 공장에서 부품을 많이 받는 르노삼성자동차와 미국에서 주요 부품을 조달하는 한국GM도 결국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수요절벽’과 공급망 차질이 4개월 이상 지속되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약 30%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자동차산업은 수출 2위 품목에 오를 만큼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유동성 위기를 겪는 부품사에 긴급하게 자금을 지원하고 자동차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코로나19 위기는 내우외환의 복합적 성격이 강하다”며 “과거처럼 수출 중심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병욱/이선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