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하락장'서 지분 늘리는 오너家

입력 2020-04-10 17:08
수정 2020-04-11 01:26
코로나발(發) 충격으로 주가가 요동치자 상장사 오너가(家)들이 주식시장에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배력 강화, 경영권 승계 등 이유는 다양하지만 폭락장을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경험상 알아차린 저가 취득 기회”

1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장녀 박주형 금호석화 상무는 이달 들어 금호석화 주식 7918주를 매입했다. 5억원어치 규모다. 연초 7만6000원이던 금호석화 주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지난달 4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재계에서 박 상무의 행보는 관심의 대상이다. 금호가(家)에서 여성이 경영에 참여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그간의 금기를 깨고 2012년 박 상무에게 현금을 증여해 금호석화 지분을 취득하도록 했다. 올 들어서도 꾸준히 지분을 늘려온 박 상무에게 현재 주식시장은 절호의 기회다. 연초 7만4000원대에 금호석화 주식을 매입한 것에 비하면 훨씬 낮은 가격으로 지분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전략기획실장도 급락장을 활용해 SK 지분을 다시 확보하고 있다. 지난 2일부터 9일까지 그는 약 62억원을 들여 SK 주식 3만7366주를 주당 16만원대에 샀다. 지난달에도 3만4021주를 매수했다. 보유하고 있는 SK 지분은 45만9689주(지분율 0.65%)로 늘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서 2018년 SK 주식 48만 주를 증여받은 이후 최 상무는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매수 타이밍이라고 본 셈이다. 연초(25만8000원) 대비 36%가량 빠진 금액에 매입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오너가들이 경험적으로 현재 주가가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해 저가 취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락장 뛰어든 이유는 제각각

주식시장에 미친 코로나19 충격파를 활용하고 있는 오너가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주주가치 제고와 책임경영 차원에서 지난달 말 한솔홀딩스 주식 238만5314주(약 68억원어치)를 매수했다.

사조그룹과 노루그룹은 승계에 활용하는 모양새다. 사조그룹 3세인 주지홍 사조산업 부사장은 지난달 23일 사조산업 주식 6600주(약 1억4000만원어치)를 사들였다. 주 부사장이 주식을 매입한 이날은 사조산업 주가가 지난달 19일(1만8950원)을 제외하고 최근 1년 새 가장 낮은 날이었다. 작년 3월에만 해도 사조산업 주가는 5만3000원 선에 거래됐다. 사조산업은 사조그룹의 지주사 격인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경영 수업 중인 노루그룹 3세 한원석 노루홀딩스 전무도 최근 노루홀딩스 주식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다. 한 전무는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한 전무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날까지 노루홀딩스 주식 4만3771주(약 3억원어치)를 장내 매수했다. 지분은 3.23%에서 3.55%로 늘었다. 한 회장에 이어 2대주주로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효성가(家)는 미성년 자녀들 명의로 주식을 사들여 이목을 끌고 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딸 조인영·인서 씨는 지난달 30일 각각 효성 주식 1310주를, 장남 조재현 씨는 870주를 매입했다. 2억원어치 규모다.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상 효성 사장의 자녀인 조인희·수인·재하 씨도 같은 날 각각 870주를 매수했다. 주식을 매입한 당일 주가는 6만1300원으로 연초(7만6300원)에 비해 16.7% 떨어졌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각 회사에서 시장 상황을 보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워낙 시장이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오너가가 움직인다고 해서 지금이 매수 적기라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