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미국 중앙은행(Fed)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달러화 수요가 치솟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국내 외환시장 안정화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Fed와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달 19일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이날부터 최소 6개월(오는 9월 19일)이다. 통화스와프는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릴 수 있는 협정이다. 한은은 통화스와프로 조달한 달러화를 금융시장에 바로 공급할 계획이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30일 체결한 300억달러 계약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 계약은 2010년 2월 1일 종료됐다.
외환시장 불안감 해소 기대
이번 협정으로 한국과 양자 간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나라는 8개국에 이른다. 캐나다(사전 한도 없음) 미국(600억달러 상당) 스위스(106억달러 상당) 중국(560억달러 상당) 호주(81억달러 상당) 말레이시아(47억달러 상당) 인도네시아(100억달러 상당) UAE(54억달러 상당) 등이다. 이 밖에 ‘아세안 10개국+한·중·일 3개국’의 다자간 통화스와프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 체제를 통해서도 384억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전체 통화스와프 계약 규모는 사전 한도가 없는 캐나다를 제외하고도 1932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 2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4091억7000만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6000억달러가 넘는 실탄을 확보한 셈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무게감이 다르다. 향후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미리 정한 한도 내에서 Fed로부터 달러를 끌어다 쓸 수 있는 ‘동맹관계’를 맺은 셈이다. 그만큼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달러 보유액이 바닥나는 순간 원화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휴지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외신인도를 의심받을 때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해명에 나서야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통화스와프 체결은 ‘원화가 미국의 보호 대상 통화가 됐다’는 의미도 있다. 상황에 따라 미국이 발권력을 동원해 600억달러인 한도를 추가로 늘릴 여지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계약에 대해 “Fed가 주도해서 일사천리로 체결했다”며 “현재 금융시장 상황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도 “이번 계약은 급격히 악화한 글로벌 달러자금시장의 경색 해소가 목적”이라며 “앞으로도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금융시장 안정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이탈은 당분간 계속될 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팬데믹(전염병 세계적 대유행) 현상을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급격히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공포에 질린 외국인의 이탈이 환율을 밀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외국인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부터 최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꾸준히 주식을 순매도했다. 주식 매각자금을 곧바로 달러로 환전하려는 외국인의 수요가 넘치면서 ‘달러 가뭄’이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증시가 폭락하면서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통지)이 발생한 것도 달러 수요를 부추겼다. 마진콜은 투자자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을 때 주가가 하락하면 금융회사가 담보·증거금을 더 넣거나 대출을 줄일 것을 요구받는 것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주가연계증권(ELS)을 대규모로 판매한 한국 증권사들도 마진콜에 대응해 달러를 매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002억1439만달러로 전달보다 89억5703만달러 줄었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 규모다.
통화스와프에 과도한 기대는 버려야
전문가들은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의 심리적 안정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의 압박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2008년에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 외환시장은 한동안 안정된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오름세로 돌아선 바 있다. 2008년 10월 달러당 1400원대로 치솟았던 환율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후 1200원대로 떨어졌지만 연말께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고 이듬해 3월에는 155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금융시장의 공포감을 크게 누그러뜨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통화스와프가 ‘만병통치약’이 되리라고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NIE 포인트
① 원·달러 환율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② 통화스와프의 장점은 무엇일까.
③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다른 나라와 체결한 것보다 중요한 이유는 뭘까.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