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감염병에 대한 건강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 중국 등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 속도전을 펴고 있지만 이들 국가에서 개발한 제품을 한국에서 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위기감도 밑바탕이 됐다. 업계에서는 오는 6월부터 국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국산 백신 임상시험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산 백신 6월, 치료제 7월 임상 진입
국내 바이오업체 제넥신은 지난달 코로나19 백신의 동물실험에 들어갔다. 국내 백신 개발 업체 중 가장 빠른 속도다. 6월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성영철 제넥신 회장은 “임상시험은 9월께 끝낼 것”이라며 “이르면 올해 안에 의료진을 포함한 고위험군에 백신을 투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물질 선정 단계가 마무리되면 동물실험을 거쳐 9월께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천식약 성분 시클레소니드, 구충제 성분 니클로사마이드를 코로나19 신약 후보 약물로 선정했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항체는 코로나19와 같은 병원체(항원)가 몸속에 들어왔을 때 대항해 싸우는 단백질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중화항체를 선별하는 단계”라며 “세포주 개발, 동물실험 등을 거쳐 7월 중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안전성 입증된 의약품의 재발견
이들 기업을 포함해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뛰어든 국내 제약·바이오회사는 20곳이 넘는다. 상당수는 환자에게 사용하던 치료제를 코로나19에 적용하는 신약 재창출 연구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특정한 질환을 치료하는 후보물질을 발굴한 뒤 동물실험을 거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 1상, 효능을 파악하는 임상 2상, 장기 안전성과 시장성 등을 함께 파악하는 임상 3상을 거쳐야 신약으로 허가를 받는다. 이를 위해 평균 12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미 개발돼 사용하는 약을 쓰면 안전성 문제가 비교적 적다. 긴 시간이 걸리는 임상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이 당장 치료제를 개발해야 하는 감염병 상황에서 신약 재창출 연구가 활발한 이유다. 부광약품 항바이러스제 레보비르, 신풍제약 말라리아약 피라맥스, 일양약품 항암제 슈펙트 등은 시험관 연구를 통해 코로나19 사멸 효과가 입증돼 주목받았다. 이들 업체는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할지 등을 논의하는 단계다.
치료제로 개발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환자 치료 목적의 사용 승인을 받은 약도 늘고 있다.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쓰는 젬백스의 항염증치료제(GV1001),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충남대병원 등에서 쓰는 이뮨메드의 바이러스 염증치료제(HzVSF v13주) 등이다.
길리어드 ‘렘데시비르’ 연구 막바지
해외 기업들도 신약 재창출 연구를 통해 치료제를 찾고 있다. 세계적으로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던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다. 임상 2상 단계에 머물던 에볼라 치료제를 코로나19 치료제로 적응증을 바꾼 것이다. 중국, 한국, 미국 등에서 임상 2상과 3상 시험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달과 다음달 임상 결과가 나오면 바로 치료제로 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의대 코로나19 과학위원회에 따르면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인간면역결핍치료제(HIV)인 애브비의 칼레트라 등도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간염약인 머크의 레베톨과 길리어드의 소발디, 독감약인 후지필름의 아비간과 길리어드의 타미플루 등도 마찬가지다.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는 지난 3월 세계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을 투여했다. 7~8월께 결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바이오기업 이노비오도 지난 6일 미국에서 첫 투여를 시작했다. 다만 이들 백신이 개발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절차가 남았다.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백신 개발에 18개월이 걸린다고 했다”며 “백신 개발은 상당히 험난하고 먼 길”이라고 했다.
이지현/임유/이주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