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8월 51만명 사망"…일본·영국 코로나 대책 바꾼 논문

입력 2020-04-09 13:24
수정 2020-07-08 00:02

일본이 4월8일 0시부터 도쿄 등 7개 대도시 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언하기까지 '영국의 경우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8월까지 51만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논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전문가팀이 지난 3월 중순 발표한 논문이 코로나19 대책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의 결정을 바꿨다고 9일 보도했다. 이 논문은 코로나19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와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 등 3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환자수를 예측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는 국민들 다수가 면역력을 갖출 때까지 방치하는 전략이다. 소극적인 개입은 대규모 이벤트를 자제시키는 수준의 70대 이상 고령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전략, 적극적인 개입은 학교봉쇄와 같은 강력한 대책을 실시해 사람간 접촉을 억제하는 전략이다.

임페리얼칼리지의 논문은 기본적으로 영국을 모델로 작성됐다. 영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코로나19를 관리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6만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까지 감염되면서 인식을 바꿨다.

특히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8월까지 사망자가 51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결과가 나오면서 뒤늦게 적극 대응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경제적인 악영향을 고려해 긴급조치선언을 최대한 늦췄던 일본의 상황과 흡사하다.

일본 정부는 사람간 접촉을 75% 줄이면 사망자를 8700명에서 3만9000명까지 낮출 수 있다는 논문의 제안에 주목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 저녁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70~80% 낮추자"고 강조한 이유다.

일본 정부는 현재 코로나19 환자 1명이 2~3명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파악하고 감염률을 1명 미만으로 낮추는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접촉을 80% 줄여서는 감염확대를 막을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요코하마시립대학 연구팀은 "도쿄는 접촉을 98% 줄여야 유럽과 같은 감염폭발을 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출시간을 지금보다 주당 110분 줄여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한 이후 외출하는 사람이 줄었지만 지금과 같이 강제력이 없는 조치로 접촉을 80% 줄이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NTT도코모의 위치정보 분석에 따르면 8일 오전 8시 도쿄역 마루노우치 주변의 체제인구는 작년 같은 요일에 비해 46% 줄었다. 체제인구가 28% 줄었던 지난 1일보다 더욱 외출하는 시민이 줄었지만 80%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도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신주쿠역 니시구치 주변도 1일 25%에서 8일 37%로 체제인구가 줄었지만 눈에 띄는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 뉴욕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의사들이 "지금의 도쿄가 2주전 뉴욕과 흡사하다"며 경고하는데도 퇴근길 이자카야에는 여전히 손님들로 가득하고, 지하철역 주변은 만원이다.

전날 일본 정부는 현재 1만2000건인 1일 코로나19 검사능력을 2만건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만2000건을 검사할 수 있다는 지금도 실제 하루 검사건수는 4000건에 그친다. 검사 운용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도쿄도와 정부는 아직 휴업을 요청할 대상 업종에 대해서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도쿄를 제외한 나머지 6개 대도시 지역들은 휴업을 요청할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시민들의 철저한 외출자제'만 반복하고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감염자가 5번째로 많은데도 7일 긴급선언대상에서 빠진 아이치현은 이날 독자적으로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정부에 "긴급사태선언 지역에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아이치현에는 일본에서 인구가 4번째로 많은 나고야시와 도요타자동차의 본사가 있다.

전날 도쿄 144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515명의 환자가 새로 확인되면서 일본의 코로나19 감염자수는 5685명으로 늘었다. 하루에 500명 넘는 확진자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