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코로나 이후 脫중국 공급망 재편에 대비해야

입력 2020-04-08 18:12
수정 2020-04-09 00:09
문명은 연결의 과정이다. 개체가 연결되고 신뢰를 바탕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면 가치가 창출된다. 21세기 글로벌 초연결 시대의 축소판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식탁이다. 미국산 소고기, 스페인산 돼지고기, 그리스산 올리브유, 러시아산 명태로 조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프랑스산 치즈와 이탈리아산 와인을 곁들인다. 1980년대 이후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한 고도화된 글로벌 공급망(SCM·supply chain management) 덕분이다. 이렇듯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안정적 유지는 상거래에 대한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과거 자주 접하던 ‘식량안보’ ‘주곡자급’ 등의 구호가 퇴색한 배경이다.

제조기업에서는 도요타자동차의 ‘JIT(just in time·적기공급생산)’ 시스템이 정교한 협력 네트워크의 대표적 사례다. ‘무(無)재고 시스템’인 JIT의 요체는 협력업체에서 반입한 부품이 곧바로 자동차 조립 라인에 투입되도록 해 자원 낭비를 없애는 것이다. 부품 재고와 창고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큰 방식인데, 수많은 부품을 조달하는 시간과 수량에서 미세한 오차라도 생기면 조립 라인 전체가 멈출 위험성도 높다. 도요타는 협력업체와의 상호 신뢰에 기반해 성공적인 혁신을 이뤘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 기업들의 모델이 됐다.

오늘날 개인과 집단은 규모를 불문하고 각자 나름대로 자리 잡은 네트워크의 생태계에서 존재한다. 기업들은 기획-조달-생산-물류-판매 등 전 과정에 걸쳐 글로벌 차원에서 외부와의 협력으로 사업을 유지한다. 한국 자동차 공장이 중국, 동남아시아, 일본의 협력업체와 긴밀히 연결돼 있고, 식품기업도 미국과 브라질의 농산물 수출업체와 공조해 원재료를 조달한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운영의 핵심은 상호 신뢰와 협력이다. 만약 참가자들 사이에서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고 그것이 적기에 해소되지 않는다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최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에 빠졌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부품 조달이 중단돼 생산을 멈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단기적인 충격은 시간이 흐르면 해소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분업구조 자체가 격변에 휩싸일 전망이다. 소위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신뢰하기 어려운 파트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9년 12월 최초로 감염자를 확인한 의료진 8명을 괴담유포 혐의로 체포했다. 사태가 심각해진 1월 중순 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수백만 명의 우한 거주민이 국내외로 이동한 뒤였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비상상황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정확한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급기야는 3월 13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해 10월 우한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미군이 전염병을 가져왔을 수 있다”고 주장해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의료용품 수급에서도 공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3M의 마스크 생산공장이 중국에 있는데 지난달 해외 반출이 전격적으로 금지됐다. 미국으로서는 자국의 자본과 기술로 생산한 제품을 정작 필요한 시점에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염병 발생 자체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이후의 대응에서 중국은 정보 은폐, 늑장 대응, 적반하장으로 신뢰를 잃고 있다. 이는 전염병이 진정된 이후 탈(脫)중국 글로벌 분업구조의 격변을 예고한다. 지난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는 차원이었다면 앞으로는 국가안보적 차원까지 결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사용하는 의약품의 80%가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운 중국에서 수입되는 상황에 안보적 위협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런 글로벌 분업 질서의 격변에 대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중장기적으로는 탈중국 차원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미래의 환경 변화를 조망하고 현재의 사업 구조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