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08일(06:43)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부가 조성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가동을 시작했지만 투자방침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채안펀드 운용사들은 “비싼 가격에는 살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채권시장에선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채안펀드가 지난 6일 처음으로 회사채 매입을 시작하면서 대략적인 운용방침이 나왔다. 회사채 투자를 맡은 삼성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이날 롯데푸드의 회사채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참여해 총 300억원어치 매수주문을 넣었다. 발행금액의 50% 미만을 사들인다는 지침 아래에서 가능한 최대금액을 투입했다. 이들 운용사는 롯데푸드가 제시한 희망금리(민간 채권평가사들이 시가평가한 금리)보다 0.2%포인트 높은 수준의 금리를 제시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9개 기관투자가 중에서는 일본 미즈호코퍼레이트은행(+0.1%포인트)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사실상 시장가격보다는 싸게(금리는 높게) 매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평가다.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유동성을 대거 공급하지만 비싸게 사들여 위험을 키우진 않겠다는 뜻이다. 채권을 비싸게 매입하면 나중에 발행회사의 신용위험 확대로 채권가격이 하락할 때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시장가격보다 싸게 회사채를 사들이면 가격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위원회도 “자금이 필요한 곳부터 우선 지원한다”는 원칙과 함께 “무리한 베팅으로 시장 위험을 짊어지진 말라”고 채안펀드 운용사들에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안펀드가 아직 담지 않은 여신전문금융회사채 역시 이 같은 방침으로 인해 아직 매입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선 채안펀드가 적어도 시장가격 정도로 매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얼어붙은 투자심리로 이미 회사채 유통금리 자체가 크게 뛴 상황에서 채안펀드가 다른 기관들과 똑같이 시장가격보다 싸게 채권을 사들이면 당초 기대보다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6일 기준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2.10%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다음날인 지난달 17일(연 1.74%) 이후 3주 동안 오히려 0.36%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만기의 국고채(연 1.052%)와의 금리 차가 1.048%포인트까지 벌어지며 2010년 12월7일(1.12%포인트) 이후 9년4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증권사 채권운용 담당임원은 “마중물 역할을 하는 채안펀드가 시장가격보다 싸게 매수에 나서면 다른 투자자들도 ‘정부조차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이같은 운용방침이 지속될 경우 신용위험 확대로 벌어지는 회사채 스프레드(국고채와의 금리 차)가 안정화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채안펀드 운용사들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 중 눈에 띌 정도로 금리를 높게 적으면 낙찰 자체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지원보다는 수익을 위한 베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위험을 많이 짊어지면서 비싼 가격에 채권을 사들이는 것도 부담이다. 실제로 삼성운용과 한투운용은 지난 6일 롯데푸드 수요예측 당시 입찰 마감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참여 기관들 중 낮은 수준으로 매수 희망금리를 적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