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의 '1등 금융사' 쟁탈전이 치열한 한국과 달리 15년간 메가뱅크(대형 은행그룹)의 서열이 굳건했던 일본에서도 지형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만년 2위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이 미쓰비시UFJ금융그룹을 순이익면에서 역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의 전경련 격인 경단련에서도 위세를 강화하고 있다.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결산 결과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의 순익이 15년 만에 미쓰이스미토모에 뒤쳐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3분기(2019년 12월)까지 순익은 미쓰이스미토모가 6108억엔(약 6조8425억원)으로 5842억엔의 미쓰비시UFJ에 앞서 있다.
당초 두 은행그룹의 올해 예상치는 미쓰비시UFJ가 7500억엔, 미쓰이스미토모가 7000억엔이었다. 미쓰비시UFJ가 16년 연속 왕좌자리를 지키는 듯 했던 판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로 흔들렸다. 경쟁구도가 '얼마나 많이 버나'에서 '얼마나 덜 잃나'로 바뀐 은행영업 환경 속에서 미쓰이스미토모의 순익은 예상보다 4% 감소한데 그친 반면 미쓰비시UFJ는 33% 급감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등 해외 자회사의 주가급락이 미쓰비시UFJ 대차대조표에 고스란히 손실로 잡힌 영향이 컸다.
미쓰이스미토모의 버팀목은 은행업의 핵심인 일본 상업은행 부문. 작년 3분기까지 상업은행 부문 순익은 4500억엔의 미쓰이스미토모가 3300억엔의 미쓰비시UFJ를 압도했다. 국내 상업은행 부문에서는 미쓰이스미토모의 우세가 굳어지는 분위기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평가했다.
이를 토대로 미쓰이스미토모는 올해 내걸었던 순익 목표치 7000억엔을 거의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쓰비시UFJ는 7000억엔을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두 메가뱅크의 운명이 갈린건 2004~2005년 금융대통합 당시 벌어진 UFJ 은행 쟁탈전이다. 승패의 영향은 치명적이었다. 인수전에서 승리해 미쓰비시UFJ도쿄은행으로 거듭난 미쓰비시UFJ는 일본 최대 금융회사 자리를 굳건히 한 반면 미쓰이스미토모는 만년 2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UFJ 쟁탈전 이후 미쓰비시UFJ 타도는 미쓰이스미토모의 숙원이었다.
미쓰이스미토모의 위상변화는 지난달 9일 있었던 경단련 부회장 인사에서도 확인됐다.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일본 3대 메가뱅크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경단련 부회장에 오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전통적으로 일본 경단련 부회장직 18자리 가운데 메가뱅크 몫은 2자리였다. 이 중 한 자리는 '1등 은행'인 미쓰비시UFJ의 고정석이고, 나머지 한 자리를 미쓰이스미토모와 미즈호가 번갈아 맡는 것이 관행이었다. 지난 번 '2등 은행석'은 미쓰이스미토모 차지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미즈호 차례였다. 하지만 미쓰비시UFJ를 의식한 미쓰이스미토모의 공세에 경단련은 은행몫 부행장 자리 1자리를 늘려 미쓰이스미토모를 미쓰비시UFJ와 동급으로 대우했다.
1등 자리를 빼앗기게 된 미쓰비시UFJ도 와신상담 중이다. 작년말 히라노 노부유키 미쓰비시UFJ 이사회 의장 겸 사장은 1년 만에 사장직을 반납하고 수익강화에 전념하기로 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올 3월부터 은행 영업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예정이어서 '일본판 1등 금융그룹 쟁탈전'은 더욱 흥미롭게 됐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