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은 명 재상으로 꼽혔다. 그가 한 겨울 수레를 타고 강을 건널 때였다. 백성들이 옷을 걷고 맨발로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가엽게 본 자산은 자신의 수레를 내줘 백성들을 건너게 했다. 이런 자산의 행동에 대해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백성들의 고통을 보듬어주었다며 자산을 추앙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맹자의 평가는 냉정했다. 자산의 행동은 칭찬을 들을만 하나 정치인이라면 한 발 더 앞서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혜로우나 정치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행위(惠而不知爲政)”라는 것이다. 백성의 일시적인 환심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다리를 놓아 백성들이 언제라도 걱정없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야 진정한 지도자라는 게 맹자의 지적이다. 맹자는 “군자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한다면 길을 갈 때 행인을 물리치고 가도 무방하다. 사람마다 모두 기쁘게 해주려면 날마다 그 일만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했다. 백성이 일시적인 고통을 받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정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라는 메시지다. 자산의 사례는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자주 인용된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오자 여야가 포퓰리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따로 없다. 서로 울고싶은 차에 빰 때려주는 격이다. 선거 때만 되면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지만, 이번엔 신기원을 열어가는 듯하다. 수 조원 정도가 아니라 수십조원을 퍼주기 못해 안달난 듯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고리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을 주자고 주장한 지 하루만에 더불어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 가구에 100만원(4인 기준)을 지급하기로 한 뒤 탈락자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야당이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 됐다. 민생당도 지난 3일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의 코로나지원금 지급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이미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이 지난달 17일 국회를 통과했다.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하겠다는 정부안대로라면 9조1000억원이 필요하다. 민주당 제안대로 간다면 13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19일 50조원 규모의 비상금융조치 방안을 내놨다. 통합당은 240조원 규모의 ‘코로나 긴급 지원금 패키지’를 발표했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비상경제 재원 100조원 마련을 주장했다. 기존 예산을 전용해 마련하자는 것이지만, 올해 전체 예산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를 항목 조정을 통해 조달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결국 상당 규모를 국가 부채를 통해 마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빚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일단 국민들에게 돈을 준 뒤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충당한다는 것이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어리석은 짓을 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 대국민 사기극이 아닐 수 없다. 후대에게 빚을 떠 넘길 수도 있다. 경제 체질을 튼튼히 하는 정책들은 도외시되고 있다.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은 이뿐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청년·신혼맞춤형 도시’를 통한 공공주택 10만채 공급, 2022년까지 5780억원을 들여 전국에 무료 공공 와이파이 5만3,000개 설치, 국립대 반값 등록금 등도 내놨다. 통합당은 농업, 축산업, 임업, 수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에 연 120만 원을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농어업인 연금제’ 등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4년 내에 전문대와 국공립대 무상교육, 사립대 반값 등록금, 한 해 2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19~29세 청년 1인 가구에 3년간 월 20만원 주거지원 수당 지급 등을 내걸었다. 민생당도 국공립대 49만명에 대한 무상 등록금, 사립대 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 공약을 내세웠다. 맹자가 살아 있다면 이런 우리 정치권에 어떤 질타를 할까.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