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공장, 현대자동차 터키 이즈미트 공장, LG전자 미국 디트로이트 공장. 4월 6일 기준 '셧다운'(가동 일시중단) 중인 국내 대기업 주요 공장입니다. 지난 2월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국내 주요 기업 해외 공장들도 줄줄이 멈춰서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을 제외한 주요 스마트폰 공장이 멈춰선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인도 노이다 공장이 대표적입니다. 연 생산량은 약 1억대로 삼성전자 전체 스마트폰 생산량(약 4억대)의 25%를 차지합니다. 인도를 포함한 서남아시아 스마트폰 물량을 담당합니다.
인도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격전지'로 꼽힙니다.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입니다. 인구 수도 14억명으로 많거니와 보급률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인도 스마트폰 점유율 2위(20.0%) 삼성전자와 샤오미 비보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 간 격전이 치열합니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고위 임원이 "우린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과 안시성 전투의 양만춘 장군과 같은 심정으로 중국과 싸우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이런 인도 시장의 물량을 책임지는 공장이 멈춰섰으니 삼성전자 경영진의 걱정은 얼마나 클까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현재 중국과 한국을 뺀 전 글로벌 공장이 '가동 중단' 상태입니다. 해외 공장만 놓고 보면 12곳 중 10곳이 멈춰선 것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현대차의 3월 판매량은 30만8503대로 지난해 3월 판매량(39만177대)과 비교해 20.9% 감소했습니다. 내수 판매는 7만2180대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증가했지만 해외 판매는 26.2%나 감소했습니다. 이번달에도 셧다운이 지속되면서 실적이 더욱 안 좋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LG전자도 전체 41개 글로벌 생산 법인 중 6개 공장의 가동이 서있는 상황입니다. LG전자 관계자는 "전 세계로 물량을 보내는 '거점 공장'이 멈춰선 것은 아니라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한국 '전(戰)·차(車)' 군단의 핵심 기업 해외 공장은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을까요. 3월 이후 4월 둘째주까지 각 공장의 '가동 중단 일수'(주말 포함)를 다 더해봤더니 총 323일이 나왔습니다. 전체 조업일수의 약 30% 수준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3일에 한 번 꼴로 공장이 멈춘 것입니다.
미국 공장의 상황은 특히 심각합니다. 현대차 LG전자의 미국공장은 43일 중 21~24일간 조업 중단을 해야할 상황입니다. 3월 이후 4월 둘째주까지 절반 정도는 문을 닫아야한다는 말입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19 여파로 '3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셧다운'이 첫 번째입니다. 물건을 만들 수가 없는거죠. 두 번째는 '물류망 붕괴'입니다. 각 국 정부가 '이동 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제품 재고가 있더라도 옮길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판매 마비'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물건을 팔고 싶어도 점포가 문을 닫아 팔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현대차 판매망의 70%가 문을 닫았고,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팔았던 통신사 매장의 80%가 잠정 폐쇄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기업인들은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라서 손 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전자계열사 관계자는 "소재·부품·장비 조달 같은 문제는 임직원들이 백방으로 뛰어서 해결할 수 있지만 전염병 문제는 회사 차원에서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며 "떨어지는 실적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어 '무력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기업들은 정부가 '기업 애로 사항'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달라고 요청합니다. '한국인 입국 제한' 등 기업 활동에 지장이 있는 조치를 풀기 위해 각 국 정부와 논의해달라는 겁니다. 항공 등 이슈가 된 업종 뿐만 아니라 전 업종을 아우르는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얘기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서 연이어 나옵니다.
아직까지 정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진 않았습니다.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사정을 모르는 척 하는 걸까요. 아니면 대기업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확실한 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기업 생존의 '골든타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