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많이 하는 것보다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24시간 안에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나라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말이다. 그는 미국 인기 토크쇼인 ‘데일리쇼’에 나와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역량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도 한국처럼 검사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한다는 취지다. 세계적 미래의학자 에릭 토폴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유전학 교수도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을 전망하면서 한국을 ‘주목할 만한 모델국가’로 지목했다.
한국은 국경을 열어둔 채 첫 환자가 나온 이후 지금까지 76일 동안 환자 추적·관리 시스템을 가동한 유일한 나라다. 정부의 초기 대응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관의 감염 관리 수준이 높아졌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국내 의료기관의 감염병 대응 역량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급성장했다. 중증 감염병 환자 치료 역량은 세계 최고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 의대 교수)은 “환자가 숨이 멎어도 에크모(인공심폐기)를 돌리면서 버티도록 하면 살 수 있다”며 “메르스 때 몇 달간 입원했던 환자를 그렇게 살렸다”고 했다.
메르스는 코로나19와 같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한국은 중동 이외 지역에서 대규모 메르스 확산 상황을 맞았던 유일한 나라다. 사태 후 국내 의료기관은 병원 내 감염병 환자 동선을 분리했다. 에크모 등 중환자 치료장비는 방역물자처럼 비축했다.
마스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도 이때부터다. 빠른 진단과 격리 방식도 마찬가지다. 당시 186명의 메르스 환자를 역학조사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국내 병원은 자체적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메르스라는 아픈 상처가 국내 의료기관의 감염병 대응 능력을 한 단계 성장시킨 것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모든 환자를 추적 관리할 수 있게 된 것도 국내 의료 시스템을 키운 자양분이다. 유근영 국립암센터 명예교수(전 아시아태평양암예방기구 회장)는 “모든 국민의 암 통계를 정확히 내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5개국밖에 없다”며 “주민등록번호와 의료보험을 기반으로 한 국내 암역학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고 했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박리다매식 의료시장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사태에서 빛을 발했다. 병원마다 갖춘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 암 진단 등에 쓰이던 역전사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검사기기 등으로 코로나19를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한국처럼 수백 대의 PCR 장비를 보유한 검사수탁기관이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