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주인 세 차례 바뀌어…노조 77일 '옥쇄파업' 깊은 상처

입력 2020-04-05 17:45
수정 2020-04-06 01:32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지난 3일 돌연 신규 자금 지원 계획을 철회하자 회사는 깊은 적막에 잠겼다. 공장이 있는 경기 평택시 ‘칠(七)괴동’ 지명을 거론하며 “주인이 일곱 번 바뀌어야 쌍용차의 기구한 운명이 끝날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쌍용차는 ‘드럼통 버스왕’으로 불렸던 고(故) 하동환 한원그룹 회장이 1954년 설립한 하동환자동차제작소가 모태다. 당시 베트남에 버스를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1967년 정부의 자동차산업 계열화 정책으로 신진자동차(현 한국GM)에 편입됐다. 1977년 사명을 동아자동차로 바꾸고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의 줄임말인 ‘코란도(KORANDO)’를 출시하며 국산 지프차 시대를 열었다. 1986년 쌍용그룹에 인수된 뒤엔 무쏘, 렉스턴 등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선보이며 ‘원조 SUV 명가’로 자리 잡았다.

대형 세단 체어맨까지 내놓으며 승승장구하던 쌍용차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흔들렸다. 그룹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쌍용차는 1998년 대우그룹에 넘어갔다. 1999년에는 대우마저 해체돼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됐다.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팔렸지만 내리막길을 피할 수 없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가 금융위기 여파로 판매 부진에 시달리자 2009년 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만 빼먹고 쌍용차를 버렸다”는 ‘먹튀’ 논란이 확산됐다. 구조조정이 추진되자 평택공장에서 노조가 77일간 공장 문을 걸어 잠그는 ‘옥쇄파업’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0년 주인이 마힌드라그룹으로 바뀐 뒤 소형 SUV 티볼리 등을 앞세워 2016년엔 인수 이후 첫 영업흑자(279억원)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와의 SUV 신차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다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반복되는 쌍용차의 위기엔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대주주의 부재와 기술력 없는 해외 모기업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쌍용그룹이 4000억원을 투자해 1997년 내놓았던 체어맨 이후 쌍용차의 승용차 새 모델은 전혀 없다. 수천억원이 필요한 신차 개발을 지원할 대주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술력이 ‘한 수 아래’인 상하이차나 마힌드라로부터 ‘돈’ 외엔 별다른 지원을 받을 게 없었다는 점도 쌍용차의 위기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가 대주주인 한국GM과 르노삼성이 신차 플랫폼은 물론 전기차 등 미래차 기술도 함께 개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분석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