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9) 반세계화 움직임이 확산된다

입력 2020-04-04 08:00
수정 2020-04-07 09:42
전세계로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걸 바꿔놓고 있습니다. 의료 시스템은 물론 정치 경제 예술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 생활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지나간 뒤 세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코로나 이후’를 조망하는 명사 칼럼을 최근 게재했습니다.

WSJ와 독점 제휴를 맺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이 화제를 모았던 이 칼럼 17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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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참호 속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상황이 급하고 어려워지면 신을 믿지 않던 이들까지도 신의 힘에 기대려 한다는 얘기다. 요즘 세상을 보면 이 말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대유행(팬데믹) 시기엔 자유무역주의자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 전역에 창궐하자 각국은 빗장을 잠궜다. 독일 정부는 의료용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다. 주변국으로 이동하던 마스크 선적분까지 국경 근처에서 되돌렸다. 독일은 그간 ‘국경 없는 경제’를 찬양했던 나라다. 자국민 우선주의를 외치는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을 경계해 왔다. 하지만 태도가 확 바뀌었다. 다른 유럽인들이 희생되는 와중에도 독일인을 위해 필수 의료품을 사재기하고 있다. 자국민 목숨에 관한 한 ‘독일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모양새다.

독일의 이같은 행태는 놀랍지 않다.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어떤 정부든 국민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의무다. 위급할 때는 ‘지구촌 한 마을’이라는 이상론을 추구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는 문자 그대로 ‘격리’ 상황에 빠졌다. 국가 간 여행길은 거의 무너졌다. 국경을 맞닿은 나라 사이에서도 통행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 공급망도 붕괴됐다. 무역은 침체됐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각 투자자들이 안전을 추구함에 따라 자본은 각자 나라로 돌아가고 있다. 거의 모든 정부는 빈사 상태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규모 재정·통화정책을 내놨다.

각국은 이번 위기를 바탕으로 각자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일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바이러스 발원지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원인에 대해 미군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등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내놨다.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무역과 여행, 국제 협력관계 등은 정점 때에 비해선 회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세계화 체제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10년간 각국 정계의 최대 이슈는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었다. 세계화는 생산 비용을 낮추고 매우 효율적인 자본 시장을 키웠다. 하지만 부작용도 나왔다. 세계화에 따른 경제 혜택은 미국 등 선진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이 가져갔다. 이런 격차가 상대적 소외감을 키웠다.

이번 위기 이후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안으로 끌어 들이려는 움직임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각국은 위기 상황에 꼭 필요한 의료장비 등 생산기지를 자기 나라에 두고 싶어할 것이다. 기업들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매우 중요한 줄 알았던 해외 출장이 사실 화상회의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이번 위기로 국가 공동체 내부의 유대는 강화될 것이다. 미국인이라면 뉴욕에서든 뉴올리언스에서든 의료진들이 용감하게 인명을 구하려는 모습을 보며 특별한 연대감을 느낄 것이다. 독일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세계 경제에만 타격을 주는게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노력해 마련한 ‘평화롭게 협력하는 글로벌 사회’라는 게 허상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런 개념은 세상이 불안정해질 때 지속되기 어렵다.

원제= Nations push back against a globalized world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