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공사들이 운행하지도 못 하는 비행기의 임차료로 올해에만 1조5000억원 넘게 내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다. 지난해 'NO 재팬(일본 안 가기)'으로 고통받던 국내 항공사들은 이제 더 버티기 힘들다며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강제휴가, 감원 등에 이어 사업 밑천인 비행기마저 줄이고 있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대형항공사(FSC)들은 지난해 비행기 운용 리스료로 각각 3600억원, 5100억원 등 8700억원을 해외 리스업체에 지불했다. 운용 리스료는 항공사들이 리스업체로부터 비행기를 빌리며 내는 비용이다. 비행기를 빌리는 대신 직접 구매하는 비중이 높은 대한항공의 금융 리스료(비행기 할부 구매에 따른 비용)까지 더하면 양대항공사가 매년 내는 리스료는 1조원을 넘어선다. 해당 항공사 관계자는 "올해 리스료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까지 더하면, 9개 국내 항공사들이 올해 납부해야 하는 비행기 리스료는 올해 1조5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막대한 비행기 리스료를 내고 있는 국내 항공사들이 영업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고 장기화되면서 미주·유럽·아시아 등 주요 노선은 폐쇄되거나 대거 감편됐다. 실제로 지난달 국제선 여객 수는 41만5736명으로,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인 올해 1월(530만4006명)과 비교하면 92%나 급감했다. 월간 운항 편수도 두 달 사이에 2만편에서 6000편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항공사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비행기 임차료로 매달 1000억원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국내 항공사들은 리스업체를 개별 접촉해 납부시기라도 늦춰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들은 통상 리스 계약을 맺을 때 예상 매출과 수송실적을 바탕으로 리스료 규모와 납부시기를 정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불가항력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설명하며 납부 시기라도 늦춰달라고 리스업체를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정리하는 항공사도 나오고 있다. 이미 최근 비행기 두 대를 예정기한보다 두 달 먼저 리스업체에 반납한 이스타항공은 이번엔 비행기 21대를 13대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항공사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비행기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동성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며 “목숨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비행기를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항공협회는 이날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 추가 지원책을 요청하는 ‘항공산업 생존을 위한 호소문’을 보냈다. 협회는 “국적 항공사들이 보유한 비행기 374대 중 324대가 멈춰서있는 상황”이라며 “유·무급 휴직, 자발적 급여 반납 등으로 모두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자구책만으로는 생존이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협회는 “미국·중국·독일 등 대다수 국가가 자국 항공산업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 금융지원을 실시하고 있다”며 정부에 △전체 항공사에 대한 무담보 저리대출 △채권 발행 시 정부의 지급 보증 △항공기 재산세 면제 등을 요청했다. 협회 관계자는 “해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4월엔 여객이 더 줄어들 것”이라며 “당장 파산 신청을 하는 항공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