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중한 세금 부담 낮춰 돈이 돌게 할 역발상 왜 못하나

입력 2020-04-02 18:09
수정 2020-04-03 00:17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징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국내 세금 체계가 코로나발(發) 경제위기 극복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매년 가중되는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주식 양도소득세, 법인세 등의 부담은 개인 소비와 기업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여기에 ‘코로나 쇼크’까지 겹쳐 징벌적 과세의 부작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보유세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인상에 대한 ‘조세 저항’이 단적인 예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률(서울 14.7%)은 13년 만의 최고치다. 서울 반포·대치동 등의 전용면적 80㎡대 아파트의 경우 보유세 부담이 1000만원을 훌쩍 넘을 정도다. 심지어 공시가격이 시세의 ‘턱밑’까지 치솟은 지역도 있어 주택 보유자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공시가격 인상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주식 매도차익에 대해 33%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대주주’ 자격요건이 현재 10억원에서 올해 말 3억원으로 대폭 확대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조부모(외가 포함)·부모·자녀·손자녀가 보유한 주식까지 모두 포함된다. 투자 규모가 큰 개인들도 ‘대주주’처럼 과세될 판이다. 기업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경제단체들이 법인세 인하 또는 납부 유예를 정부에 건의했지만 답이 없는 상태다. 국내 법인세 최고세율은 2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18년 23.7%)보다 훨씬 높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9조원 규모의 ‘긴급재난지원금’을 푸는 등 현금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영국 등처럼 과감한 감세를 통해 경제활력을 되살리는 방안은 아예 ‘선택지’에서 배제한 듯한 기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22%) 조치가 기업 활력을 높여 위기 극복을 앞당겼다는 평가가 많다. 지속적인 감세정책을 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3000억달러(약 368조원) 규모의 ‘추가 감세카드’를 꺼내들었다.

줄곧 증세 기조였던 현 정부에서 그것도 고소득층·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은 거론조차 쉽지 않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런 점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어제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 검토를 언급한 게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지금의 절박한 경제위기에 징벌적 과세 체계를 유지하는 게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는 정부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세금 감면이 위기대응 카드로 유용한 것은 민간에 돈이 돌아야 세수 기반이 확대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당장 단기적인 세수 감소만을 의식해 ‘감세 카드’를 제외하는 것은 단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강조한 ‘전례 없는 대책’에는 그동안 정부가 고려하지 않았던 세금 부담 완화도 마땅히 포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