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과거보다 주가가 낮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에 뛰어드는 ‘묻지마식 투자’, 과도한 대출을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 등은 자제해 주기 바랍니다.”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회의(콘퍼런스콜) 방식으로 열린 ‘금융 상황 점검회의’. 회의에 앞서 발언을 하던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불쑥 “지금은 주식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 당국자가 공식 석상에서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주식 매수 열풍에 자제를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변동성이 커지며 역대급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에서 투자 주의를 촉구한 셈이다.
동학개미가 떠받친 한국 증시
최근 개인들은 금융당국이 우려할 만큼 엄청나게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2일 코스피지수가 2.34%(39.40포인트) 오른 1724.86으로 마감하며 하루 만에 1700선을 회복하는 데도 개인의 역할이 컸다. 전일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급락한 미국 뉴욕증시 영향으로 장 초반 약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개인과 기관이 각각 2748억원, 3126억원어치 순매수한 데 힘입어 상승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2.87% 올랐다.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달 25일부터 7거래일 연속 순매수하고 있다. 이 기간 개인이 순매수한 규모는 3조3266억원이다. 코로나19가 증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지난 1월 20일부터 따지면 개인 순매수 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18조5125억원, 기관은 3조7888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코스피지수가 지난달 19일 1457.64까지 떨어졌다가 4거래일 만에 1700선을 회복하게 만든 것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삼성전자를 매수했다”는 동학개미들이었다.
주식투자 열풍이 확산하면서 증시 관련 대기 자금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달 24일엔 투자자 예탁금이 사상 처음 4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주식거래 활동 계좌는 86만 개 늘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247만 개)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금융당국도 개인투자자가 버팀목 역할을 한 덕분에 증시가 코로나19 사태에도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날 손 부위원장은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식 매수에 나서면서 1월 20일 이후 누적 순매수 규모(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합산)가 22조원에 이를 정도로 증가했다”며 “우리 기업에 대한 애정과 주식시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투자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코스닥·테마주 과열 양상 경계”
그럼에도 손 부위원장이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은 주식시장이 안정화 단계를 넘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미국·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단기간 급증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민들이 빚까지 내가며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말부터 주식시장에서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이 14조8453억원을 기록하며 12조8519억원에 그친 유가증권시장 거래액을 추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달 들어서도 이틀 연속 코스닥시장 거래대금이 유가증권시장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은 이를 과열 신호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이 유가증권시장의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동학개미운동 초반 삼성전자 등 우량 주식을 사던 개인투자자들이 매수 종목을 확대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한 증시 전문가는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사들이며 주식시장에 뛰어든 초보 개미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코스닥 테마주로 몰려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빚을 내 코스닥시장 종목을 사들이는 개인이 늘면서 한동안 감소세가 뚜렷했던 코스닥시장 신용융자 잔액도 다시 증가세로 전환했다. 지난 1일 기준 코스닥시장 신용잔액은 3조4213억원으로, 1주일 전인 지난달 25일 대비 1000억원가량 늘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요즘 은행 대출금리가 워낙 낮아져 신용대출을 받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주식 매수에 나선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각종 경제지표·기업실적 악화 등 악재 요인이 산적한 만큼 위험 관리에 방점을 두고 조정 시 분할 매수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