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 '연필로 쓰기' 기획…"친근한 소재 하나에 집중해야 성공"

입력 2020-04-01 17:07
수정 2020-04-02 11:03
“에세이는 사람 이야기예요. 그 사람의 이야기에 뭔가 뽐낼 만한 거창한 것보다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출판계에서 ‘에세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부 국내 5팀장(36·사진)의 말이다. 1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이 팀장은 “제가 기획·편집한 책들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소재에 집중돼 있는 게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편집한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와 소설가 김훈의 《연필로 쓰기》가 대표적이다. 두 책은 지난해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들 만큼 인기를 얻었다. 《걷는 사람, 하정우》는 지난해 말 예스24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24권에도 선정됐다.

《걷는 사람, 하정우》는 제목 그대로 배우 하정우의 걷기를 통한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 이 팀장은 “책 출간을 위해 하정우 씨와 만나 연기, 그림, 걷기, 영화연출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걷기 얘기가 가장 재밌고 힘이 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걷기가 그의 작품 활동이나 삶의 철학과 연결돼 있었다”며 “다른 소재들보다 걷기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었던 이유”라고 덧붙였다.

《연필로 쓰기》는 김훈 작가의 집필실에서 우연한 계기로 출발했다. “원고 마감시간에 맞춰 집필실에 찾아갔더니 김 작가께서 지우개 가루를 휘날리며 글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저를 보시고는 ‘연필로 쓰기’라는 정진규 시인의 시를 건네주시면서 ‘제목은 가까운 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작업도구 중 작가의 삶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연필에서 에세이집 출간 기획이 시작됐죠.”

이 팀장은 14년차 에세이 편집자다. 2012년 에세이로는 이례적으로 60만 부가 넘게 팔린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등 그동안 수많은 인기 에세이를 기획했다. 그의 관점에서 인기 있는 책을 넘어 오래 읽히는 책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요새 미디어에 영향을 받아 인기를 얻는 이른바 미디어셀러가 많지만 그런 팬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과 오래가는 책은 별개”라고 했다. 이어 “유행과는 다른 작가만의 의외성이 있는 소재와 진심 어린 글이어야 독자들로부터 두고두고 사랑받는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인기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허지웅에게서 20대 시절 반지하방에서 고루한 삶을 버텨 오던 작가의 모습에 감동해 출간을 제안했다. 아이유, 조용필 등의 히트곡 가사를 지은 인기 작사가 김이나에게선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가 아니라 가수와 팬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섬세한 연구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책을 만드는 자신만의 편집 철학이 있을까. “좋은 이야기일수록 많이 알려져야 하고, 좋은 책은 많이 읽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죠. 독자들에게 ‘이 책 한번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편집으로 좋은 이야기가 많이 읽혀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