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방안은 한국 포퓰리즘이 중증단계로 진입 중임을 확인시켜 준다. 지원 대상으로 유력한 ‘월 소득 710만원’을 연봉으로 계산하면 8520만원이다. 억대 연봉에 가까운 고소득자의 생활고까지 챙기겠다는 ‘어버이 정부’의 등장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이야…. ‘재정 뒷감당이 어렵다’며 반대하는 홍남기·김상조 경제팀의 저항을 청와대 노영민·강기정 콤비가 ‘총선도 다가오니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논리로 제압했다고 한다. ‘총선용 현금 살포’로 불러도 무방할 듯 싶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눈덩이 적자국채다. 세수 부족을 메우는 적자국채는 국민이 세금으로 상환해야 해 국가 부채 중 가장 악성이다. 후손들의 지갑을 터는 격이어서 역대 정부는 적자국채 발행을 최대한 자제했다.
1인당 나랏빚, 올 500만원 폭증
문재인 정부는 딴판이다. ‘재정이 혁신의 마중물’이라며 방만 운영한 결과 적자국채가 폭증세다. 2018년 15조원이던 한 해 적자국채 발행액은 작년 34조원으로 뛰었고, 올해는 역대 최대인 80조원 안팎으로 치솟는다. 80조원을 30세 미만 인구 1600만 명에게 균등 배분하면 1인당 500만원꼴이다.
자녀 세대 지갑에서 500만원씩 빼쓰는 이런 상황은 한국은행 잉여금 등 여유기금까지 탈탈 털어서 앞당겨 쓴 데 따른 필연적 귀결이다. 최초로 2년 연속 세수 감소가 진행되는 와중에 ‘초슈퍼예산’을 고집하다보니 본예산을 짤 때부터 60조2000억원의 대규모 적자국채 편성이 불가피했다.
코로나 대응 재원도 적자국채 아니면 대안이 없을 정도로 나라 곳간이 위태위태하다. 1차 추경 11조7000억원의 88%인 10조3000억원이 적자국채다. 그제 발표한 2차 추경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재난지원금 재원 조달 방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다 경기 추락에 따른 세수 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세입경정용’ 3차 추경까지 기정사실이 됐다. 최소 5조원, ‘경제 쇼크’가 커질 경우 10조원을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 후손들에게 거액의 빚을 떠안기는 몰염치를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적자 국채로 연명하는 재정
초유의 사태이니 재난지원금 방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단견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세금 인상을 예상한 중산층의 소비 감소를 부를 개연성도 따져봐야 한다. 재정 지출이 늘면 하위 40%는 소비를 늘리지만, 중간 40% 계층의 소비가 그보다 더 많이 감소한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실증 보고서도 나와 있다. 약간의 소비 증가가 있더라도 경제부양 효과가 더 큰 용처가 많다는 점에서 신중한 행보가 필수적이다.
미국이 주니까 괜찮지 않으냐는 관점도 난센스다. 기축통화인 달러는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 가치가 더 오르지만, 원화는 대책없이 요동치는 취약한 통화다. 재정 퍼주기의 파괴적 결말은 그리스와 베네수엘라가 아니더라도 도처에 널려 있다. 포르투갈은 국가채무비율이 7년간 16%포인트 오른 뒤 불과 3년 만에 국가신용등급이 8계단이나 추락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달 한국리포트에서 “지금과 같은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는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이라고 경고한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코로나 사태는 어찌보면 일종의 방아쇠다. 오랜 글로벌 저금리로 좀비기업이 확산하고 기업 부실이 누적된 게 위기의 본질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무제한 시장 개입이 실패해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회오리 속으로 진입하는 예상하지 못한 사태의 전개도 상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정 여력 보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더 이상의 재정건전성 훼손은 파국을 자초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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