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소득 하위 70% 가구에 100만원(4인 기준)씩 지급하기로 했다. 어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의 결정에 따라 1400만 가구가 지원금을 받게 될 전망이다. 소요 예산은 9조원이 넘는다. 정부·여당이 그동안 운만 띄웠던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질 판이다.
하루하루가 위기인 취약·피해계층의 사정을 보면 딱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랏빚으로 쌓인 11조7000억원의 추경이 국회를 통과한 지 2주 만에 2차 추경은 또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다. 더구나 2차 추경에는 온갖 구실로 다른 지출 항목까지 대거 끼어들 소지가 다분하다. 여권의 그간 주장을 봐도 그렇고, 역대 정부의 위기 대처과정을 돌아봐도 뻔하다. 전방위로 퍼져가는 ‘코로나 쇼크’를 보면 그 파장이 한두 달 안에 끝날 것 같지도 않다.
긴급재난에 대처하면서 재정건전성도 최대한 지키는 방법이 없지 않다. 2차 추경을 거론하기에 앞서 정책적 융통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동안 추경을 편성할 때는 본예산은 놔둔 채 추가로 지출항목을 정해 국채 발행 등 재원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예산 지출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512조3000억원의 2020년도 예산을 지혜롭게 조정하면 재난 대처와 재정건전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야당에서 “올해 예산 중 100조원을 코로나 비상예산으로 변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각 부처의 예산을 20%씩을 줄이면 100조원이 확보된다는 계산이다. 정부와 여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한다면 예산정책의 의미 있는 모델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가 장기화하면 수십조원에 달하는 SOC 예산부터 예정대로 집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도 어차피 ‘군살 빼기’ 등 지출 구조조정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 ‘슈퍼예산’의 지출항목을 잘만 조정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대구시가 기존 예산을 전용해 2000억원을 코로나 대책에 쓰고 있는 사례도 배울 만하다. 이런 유연성이야말로 대통령이 언급한 ‘창조적 발상과 정책적 상상력’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