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계열사와 아시아나항공 등 비우량기업 채권 거래금리가 연 10%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고위험 회사채를 처분하고 있어서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일부 투자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빠른 가격 회복을 기대하고 매수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번엔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수익 회사채 매물 속출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두산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10여 종의 회사채가 27일 연 6~10%대 금리에 거래됐다. 오는 9월 26일 만기가 돌아오는 두산인프라코어 제42회 회사채는 액면 1만원짜리가 9600~9750원에 거래됐다.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거래금리로 따지면 연 10.8~8.9%에 해당한다.
매년 450원(액면금액의 4.5%)의 이자를 3개월 단위로 나눠 지급하는 이 채권은 이번주 최저 9000원 안팎(거래금리 연 18%)에 팔리기도 했다. 지주회사인 두산과 두산퓨얼셀 회사채도 이날 연 7~8% 금리에 거래됐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과 건설, 해운업 채권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대한항공 채권은 종류별로 연 5~8% 수준의 거래금리를 보였다. 20여 종의 종목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은 연 7~10% 거래금리를 기록했다.
이 밖에 건설업체인 한양과 한신공영, 해운업체인 폴라리스쉬핑 회사채도 연 6~9% 금리에 팔렸다.
2009년 고수익 기회 재현?
일부 투자자는 최근 거래금리 상승을 기회로 판단하고 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KRX에 따르면 이날 장내 일반채권시장 거래대금은 약 320억원으로, 이번주 들어 전날까지 130억~200억원 수준이던 하루 거래 수준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 24일 정부가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조성 등 채권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투자자들이 매수 기회가 온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장내 일반채권시장은 주로 개인들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2008년 말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엔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 바람에 힘입어 국내 회사채 금리가 단기간에 안정을 찾은 적이 있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채권시장 안정화 대책이 나오자 고수익을 노린 개인들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장내 매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2008~2009년 회사채 금리가 치솟자 증권사 지점 창구를 통해 각각 3조8000억원과 4조9000억원어치 회사채(캐피털·카드채권 포함)를 순매수했다. 이들은 당시 신용등급 ‘A’ 회사채의 평균금리(3년물)가 2008년 11월 한때 연 9%를 웃돌다 이후 6개월 만에 5%대로 떨어져(채권 가격은 상승) 대규모 평가차익을 거뒀다.
신용등급 강등 위험 고려해야
코로나19 이후의 회사채 가격은 금융위기 때와 달리 회복에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이경록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실물경제의 타격으로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신용 위험은 빠르게 해결되기 어렵다”며 “채안펀드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오랜 기간 유지되고 규모도 점차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코로나19 충격으로 재무안정성이 떨어진 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 검토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12일 대한항공(BBB+)을, 24일에는 두산중공업(BBB+)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