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 과세기준일이 2개월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재개발·재건축 투자자들의 초조함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이전까지 멸실이 완료되면 1년치 종합부동산세를 안 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거가 늦어지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우리집 허물어주세요”
3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의 철거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조합은 이달 중 철거를 완전히 마치고 멸실등기를 신청할 계획이다. 멸실이란 건축물대장 등 공부 상에서 해당 건축물을 없애는 행정절차다. 정지심 태양공인 대표는 “전체 124개 동 가운데 1개 동만 남은 상태”라며 “등기가 나오면 서류에서도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집이 된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멸실등기 시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종부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는 매년 6월1일을 기준으로 소유자에게 납세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전 멸실등기가 이뤄진다면 종부세를 아예 피할 수 있다. 재산세는 주택이 아닌 토지에 대해서만 납부한다.
세액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급등한 까닭에 조합원들의 공포는 더욱 크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50㎡(76동 306호) 기준 공시가격은 올해 15억96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4억5000만원가량 올랐다. 조합원 김모 씨는 “세입자에 대한 강제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는 등 그동안 철거가 상당 기간 지연됐다”며 “6월 전 멸실등기가 나지 않을 경우 보유세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철거와 멸실은 여러 과정을 거친다. 석면 사전조사 이후 철거신고와 석면해체, 철거를 진행한다. 철거를 마친 뒤엔 건축물대장 말소신청과 멸실등기를 신청한다. 강남에서 재건축단지의 집단등기를 여럿 진행했던 한 법무사사무소 관계자는 “대단지의 경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데다 철거도 오래 걸리는 편”이라며 “멸실등기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주택자는 웃지만…
서울에선 개포1단지 외에도 잠실 미성·크로바와 진주아파트 등이 철거 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들 단지는 물리적인 일정 상 6월 전 멸실등기를 마치기 어렵다. 재개발구역도 수색6·7·13구역과 장위4·10구역 등이 철거 단계다. 수색6구역조합 관계자는 “부분적인 멸실은 이뤄졌지만 아직 멸실등기를 신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멸실등기의 경우 한 단지나 구역 전체의 멸실이 끝난 뒤 일괄적으로 신청과 등기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재개발구역은 아파트와 비교해 공시가격이 높지 않아 보유세 부담이 덜하다. 1주택자의 경우엔 멸실 여부와 관계없이 종부세를 아예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부세의 과세 기준이 공시가격 9억원이기 때문이다. 단독·다세대주택 가운데 이 가격을 넘는 주택은 흔치 않다.
그러나 다른 주택의 공시가격과 합산해 누진세율로 세금을 물어야 하는 다주택자의 사정은 다르다. 재개발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개발구역의 조합원은 1주택자인 원주민보다 다주택자인 투자자들이 많은 편”이라며 “직접 거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매차익을 위해 매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재건축단지의 공시가격 9억원 미만 1주택자는 멸실 이후 오히려 보유세가 늘어날 수 있다. 종부세는 원래부터 물지 않았지만 주택으로 내던 재산세 납세 기준이 토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주택 재산세는 공시가격의 60%를 과세표준으로 치지만 토지는 이 비율이 70%다. 세율도 토지가 높은 편이다. 주택은 0.1~0.4%까지 4단계인데 반해 토지는 0.2~0.5%까지 3개 구간이다. 전년 대비 세금 인상폭을 제한하는 세부담상한은 주택은 105~130%지만, 토지는 150%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