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보릿고개’를 겪던 금융회사와 기업에 화색이 돌고 있다.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으로 사들이기로 발표하는 등 ‘돈 풀기’ 채비에 나서자 “한고비 넘겼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은은 다음달부터 6월 말까지 매주 화요일 매입 요청이 들어오는 33곳 금융사의 RP를 모두 사들이기로 했다고 26일 발표했다. RP 매입은 금융사가 보유한 채권을 한은에 담보로 맡기면 한은이 해당 금융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종전까지 매입 한도를 정하고 RP를 사들인 것과 달리 한도 없이 무제한으로 RP를 매입하겠다는 의미다. RP 매입 금리는 기준금리(연 0.75%)에 0.1%포인트를 얹은 연 0.85%가 상한선이다.
이날 조치로 금융사들은 금고에 쌓아뒀던 은행채와 공공기관 특수채를 활용해 자금을 추가로 조달할 수 있게 됐다. 한은이 국고채와 통화안정증권, 정부 보증채로 좁혀 놓은 RP 담보 채권 범위를 대폭 넓힌 데 따른 것이다. 이달 12일 RP 담보 범위를 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등으로 늘렸고 이날에는 농업금융채권, 수산금융채권, 일반 은행채, 8개 공공기관(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발행채권 등이 새로 포함됐다. 이날 담보에 포함된 농업금융채권, 수산금융채권, 일반 은행채 등의 발행잔액은 총 70조원으로 추산된다.
일부 금융사는 RP 매각으로 조달한 자금을 중소·중견기업과 자영업자 지원에 쓸 계획이다.
한은과 RP 거래를 하는 금융사 33곳은 한국증권금융과 은행 17곳, 증권사 15곳 등이다. 최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 11곳이 새로 편입된 만큼 금융시장에서 불거진 자금경색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한은은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주가연계증권(ELS, 미상환잔액 48조원)을 대규모로 판매한 한국의 증권사들은 주요국 증시가 폭락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펀드매니저는 “최근 정부나 한은 차원에서 발표된 각종 정책 재료 가운데 가장 효과가 큰 것 같다”며 “최근 문제가 된 증권사 기업어음(CP)이나 여신전문금융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경색이 다소 풀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익환/이호기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