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죽고 싶은 심리적 고통, 문학으로 이해하기

입력 2020-03-26 18:00
수정 2020-03-27 02:50
많은 이가 현실 속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자살’에 대해 잘 모른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자살을 선택한 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죽은 이가 느낀 고통의 핵심에도 쉽게 닿지 못한다.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는 자살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책을 쓴 임상심리전문가 임민경 씨는 “문학은 원인과 원리를 설명하는 것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며 “문학 속 인물들을 심리학이란 렌즈로 들여다볼 때 자살이라는 현상의 본질에 한층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안나 카레리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잘 알려진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모습을 심리학적 지식과 자살학 이론 등을 통해 분석해 자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자살은 심리적 고통의 결과”라고 정의한다. 자살하는 이들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수준의 무력감과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의는 ‘자살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로 쉽게 치부하지 않게 한다. 그는 “우울증, 양극성 장애, 중독 등 다양한 정신장애가 자살과 연관을 맺고 있다”며 “문학을 통해 이런 마음에 치명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질병들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치유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살학적 관점에서 가치를 새로 발견할 수 있는 문학 속 사례를 들어 자살의 본질과 치유 방안에 접근한다. 미국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 있는 기간에 《더 벨 자》라는 명작을 남겼다. 독일 시인·극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베르테르처럼 젊은 시절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지만 본인의 아픔을 소설로 승화한 뒤 82세까지 장수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에리히 프리트는 “삶을 혐오해 쓴 문학도 사실은 삶을 위해 쓴 것이며, 죽음을 찬양해 쓴 것도 사실은 죽음을 이기기 위해 쓴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프리트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에 대해 쓰인 문학을 통해 자살이라는 현상을 살피며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때 진정 삶을 위한 문학으로 향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들녘, 208쪽, 1만4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