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가전·부품경쟁력·프리미엄…LG전자, 월풀 넘어 '세계 1등'

입력 2020-03-26 15:48
수정 2020-03-26 15:50

‘가전은 역시 LG.’

전자업계와 소비자 사이에서 익숙한 말이다. 단순히 광고 문구를 통해 알려진 것을 넘어 실적으로도 증명됐다. LG전자는 지난해 상반기 매출에서 미국 월풀을 제치고 세계 1위 가전업체로 등극했다. 영업이익에서는 2017년부터 월풀을 앞섰지만 매출까지 월풀을 넘어선 건 처음이다. 2016년만 해도 LG전자의 가전사업 매출은 월풀보다 7조원가량 뒤졌지만 3년 만에 1위로 도약했다.

○신(新)가전으로 새로운 시장 창조

LG전자의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가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월풀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신가전이었다. 가전 하면 ‘오래된 산업’이라거나 ‘더 이상 신제품이 나오기 힘들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LG전자는 이런 인식이 잘못된 편견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2011년 세계 최초로 의류관리기인 ‘스타일러’를 내놓은 데 이어 건조기 시장에선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에 2016년 말 건조기를 선보였다. 이후에도 홈 뷰티기기, 수제맥주기기 같은 ‘세상에 없던 가전’을 출시하며 가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LG전자는 시장 개척에 그치지 않고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시장을 더욱 넓히고 있다. 신가전을 생활에 없어선 안 될 필수가전으로 자리잡도록 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품목이 건조기다. LG전자는 ‘트롬 건조기’에 콘덴서 자동 세척 시스템을 적용해 건조기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조기의 효율을 유지하려면 콘덴서 표면에 쌓인 먼지를 적절히 관리해야 하는데 LG 트롬 건조기는 자동으로 콘덴서를 청소한다. 최근에 나온 신제품에는 소비자가 원할 때 버튼만 누르면 콘덴서를 추가로 세척할 수 있는 ‘콘덴서 케어 코스’ 기능도 들어가 있다.

건조기 하단에 통돌이 세탁기인 미니워시를 결합하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트윈워시’로도 활용할 수 있다.

LG 스타일러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LG 가전의 대명사로 통한다. 2011년 시험삼아 깜짝 선보인 것처럼 보였지만 연구개발에만 9년이 걸렸다. 국내외 가전 업체들이 뒤따라 의류관리기를 내놓고 있지만 LG 스타일러의 위상은 확고하다. 세계 15개국에 출시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9년간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은 특허 수만 220개다.

LG전자는 신가전에서 필수가전으로 진화할 차세대 주자로 식기세척기를 꼽는다. 사람의 일을 가전기기나 로봇이 대신 하는데 유독 설거지는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에서 사람이 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LG전자는 기존 식기세척기의 성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손으로 씻는 것보다 깨끗이 닦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보고 식기세척기의 세척력 강화에 집중했다.

LG전자는 신기술로 무장한 전기레인지를 선보이며 기존 가스레인지를 대체하고 있다. 또 물걸레 청소가 가능한 무선청소기 LG 코드제로 A9도 유선청소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건조기는 세탁기 일변도의 국내 시장 판도를 바꾸며 빠르게 필수가전으로 자리잡았다”며 “스타일러와 무선청소기 역시 새롭게 필수가전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식기세척기와 전기레인지도 ‘제2의 건조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가전의 핵심 비결은 부품 경쟁력

LG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LG만의 우수한 부품 성능이 글로벌 1위 가전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모터와 공기 압축기(컴프레서) 부문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세탁기와 에어컨, 냉장고 등 생활가전에는 크고 작은 모터와 컴프레서가 들어간다. 모터와 컴프레서가 생활가전의 에너지 효율과 소음, 진동, 내구성 등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모터와 컴프레서를 인간의 심장 또는 자동차의 엔진에 비유하기도 한다.

LG전자는 가전의 핵심 부품인 모터와 컴프레서를 국내에서 직접 개발하고 생산한다. LG 가전의 메카인 경남 창원에 있는 전용 생산라인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62년 선풍기용 모터를 시작으로 57년간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LG전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며 차별화된 부품 경쟁력을 확보해오고 있다. 1998년 벨트 없이 세탁통과 모터를 직접 연결한 ‘인버터 DD모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탁기에 넣었다. 2002년 모든 드럼세탁기에 이 부품을 장착해 인버터 DD모터 시대를 열었다. 이 기술 덕에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4년 만인 2007년 월풀과 GE를 제치고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 1위에 올랐다.

LG전자는 인버터 컴프레서를 스타일러에도 적용해 옷의 양과 종류에 맞는 코스를 자동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건조기에는 성능을 높인 소형 듀얼 인버터 컴프레서를 넣어 제품 크기를 줄이고 전기료 부담까지 낮췄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고급 가전 시장 석권

LG전자는 ‘LG 시그니처’라는 별도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를 선보이며 세계 고급 가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가전 시장은 TV나 스마트폰에 비해 품목 자체가 많고 단일 시장 크기가 작아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드는 프리미엄 사업이 쉽지 않다. 하지만 2016년 처음 나온 ‘LG 시그니처’는 단기간 내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익성 면에선 LG 가전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LG전자는 본질에 충실한 정제된 디자인과 압도적인 성능으로 시그니처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LG전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직관적인 사용성을 갖춘 초(超)프리미엄 가전’으로 시그니처 브랜드를 설명한다.

올 상반기에는 프리미엄 에어컨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월 선보인 LG 시그니처 에어컨은 냉방 성능이 강화된 제품이다. 지난해 8월 나온 제품의 냉방면적은 76㎡였지만 올해 신제품은 89㎡로 넓어졌다. 이 제품은 냉방과 공기청정, 가습, 제습 등의 기능을 모두 갖춰 사계절 공기관리기로 사용할 수 있다.

LG전자는 시그니처 브랜드로 해외 주방가전 시장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국 빌트인 시장에 주목했다. 초프리미엄 빌트인을 표방하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내세워 올해에만 미국에서 40여 개 주방가전을 내놓는다.

LG전자 관계자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와 새로운 가전을 선보여 가전명가의 성공신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