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라임 사태로 드러난 '여의도 클라쓰'

입력 2020-03-25 18:17
수정 2020-03-26 08:22
모두가 라임 사태의 ‘진실’을 묻는다. ‘희대의 금융사기’ 행각이 하나둘 드러날수록 궁금증은 되레 커진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면서 실타래는 점점 더 꼬여가고 있다.

한국 금융 역사상 이렇게 복잡다단한 사건은 없었다. 조(兆) 단위 피해 규모뿐 아니라 사기 수법도 역대급이다. 조작된 수익률을 미끼로 헤지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아댄 ‘폰지’(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은 물론이고, 피 같은 고객 돈을 쌈짓돈처럼 뒤로 챙긴 수법은 분노를 치밀게 한다.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사기 수법을 총동원했다.

심지어 라임 사기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환매가 중단돼 고객에게 돌려주지도 못한 돈을 버젓이 다른 횡령을 위한 자원으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1조5000억원대 펀드가 환매 중단된 작년 10월에도 상상 못 했던 일이다.

라임 사태의 본질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우선 화이트칼라 주도의 ‘플랫폼 금융사기’라는 점이다. 단일 사건에 이렇게 많은 사기꾼이 연루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잠적한 주범만 열 명 안팎이고, 공범은 셀 수도 없다.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라임 펀드를 플랫폼으로 내세워 다중 피라미드 구조로 사기꾼 일당과 접점을 늘려갔다. 폰지 사기에 써먹었던 개방형 모자(母子)펀드와 비슷한 방식이다. 스타모빌리티 회장, 메트로폴리탄 회장, 리드 회장, 에스모 회장 등 수많은 ‘회장님’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대부분 전과자로 도피 중이다.

더 충격적인 건 여의도 증권가의 집단 타락이다. 라임 사태에 연루된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기업금융(IB) 출신만 해도 30명은 족히 넘는다. 십중팔구 ‘SKY’ 출신 억대 연봉자다. 30억원을 받는 연봉킹도 있다. 탐욕은 끝이 없었다. 이들이 움직이자 금융회사는 장단을 맞췄다. 수익만 추구하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판단력을 잃었고, 프라이빗뱅커(PB) 수백 명은 로봇처럼 라임 펀드를 팔았다.

촉망받던 증권맨과 막가파식 회장님의 ‘콜라보’는 상상 초월이었다. 사기에 공신력이 더해진 셈이다. 라임이 단기간 폭풍 성장한 동력이자 사상 최대의 피해를 초래한 원인이다.

조력자가 없었다면 사기꾼들의 향연이 수년째 계속될 수 없었다. 금융당국은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라임 사태의 공범과 다름없다. ‘금융 경찰’ 금융감독원은 수년 동안 라임의 사기 행각을 눈치채지도 못했고, 사태가 불거진 지 8개월이 지났지만 태스크포스(TF)도 없이 우왕좌왕이다.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고향 친구인 금감원 팀장(전 청와대 행정관)을 앞세워 라임 ‘뒷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사실 어설픈 대책을 남발한 금융위원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내놓은 코스닥시장 및 모험자본 활성화 방안 덕에 라임 사기꾼들은 거대한 ‘모래성’을 쌓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코스닥시장에 전환사채(CB)로 투입된 수조원의 사모펀드 자금은 별다른 효과 없이 증발했다. 사모시장만 기형적으로 늘려 애꿎은 소액주주 피해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여전히 라임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물타기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주인공 박새로이는 중졸 전과자면서 ‘사람, 신뢰’란 흔들리지 않는 원칙으로 요식업 성공 가도를 달린다. 금융이야말로 ‘사람, 신뢰’로 먹고사는 장사다. 라임 사태로 모습을 드러낸 ‘여의도 클라쓰’는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다. 여의도는 각자의 신뢰가 어우러진 곳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