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신호 차단해 변화 스스로 만들어야…'원래 그런 것'은 없죠"

입력 2020-03-24 17:24
수정 2020-03-25 00:26

“제목에 ‘하버드’가 있으니 사람들은 보통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먼저 봅니다. 하버드대도 안 나온 사람이 하버드 관련 책을 쓴 데다 난독증으로 고생했다는 대목에 실망하면서 책날개만 보고 덮어버리더라고요. ‘부정적인 외부의 신호를 차단하고 깊이 몰입하라’고 썼는데 정작 제가 그 벽에 부딪힌 겁니다.”

전업 작가인 정주영 씨(35)는 2018년 10월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한국경제신문)을 세상에 내놨다. 그는 하버드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 학창시절엔 난독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내세울 만한 학력이나 경력, 특별한 기술이나 교수란 직함도 없다.

그런 그가 쓴 책이 출간 후 1년 넘게 별 반응이 없다가 지난해 말부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SNS로 입소문을 타면서 ‘역주행’했다. 올 1월 리커버 에디션이 나온 이후 꾸준히 순위를 높여가더니 지난달 마지막 주에 교보문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3주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정 작가를 만났다. 그가 ‘얼마나 많은 재능이 잘못된 사회적 신호로 사라졌을까’란 의문에 답을 찾아 나선 건 10년 전이다. 책의 틀을 짜고 구상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2009년 기획안과 초고 일부를 보고 관심을 보였던 몇몇 출판사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계약을 포기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책을 써내려 간 그가 마침내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사와 계약한 것은 2017년 2월이다. 그로부터 출간까지 다시 1년 넘게 걸렸다. “책 내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인용한 부분과 참고문헌을 하나하나 다시 점검하고 문장도 새로 살폈습니다. 2부는 아예 통째로 다시 썼습니다.”

대학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책을 쓴 계기가 됐다. 학교도 학부모도 ‘포기했다’는 학생에게 그는 기계적으로 문제집을 푸는 대신 한 시간 동안 한 문제만 고민하게 했다. “생각과 성적이 달라질 땐 그 변화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것임을 알려줬습니다. 스스로 재미를 발견하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게 이끌었죠.” 그는 책에서 “‘내가 이것을 잘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감정이며 강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뒷받침할 다양한 해외 사례를 촘촘하게 제시한다. 책은 똑똑하다는 이들이 모인 하버드대 안에서도 뒤처지는 학생들이 있고, 그들을 포기로 이끄는 것은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주변의 부정적인 신호였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책은 정 작가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삼대가 교사인 집안에서는 그가 평범한 회사원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다. 2009년 첫 책을 낸 뒤 4~5년에 한 권씩 세 권의 책을 냈다. 인세가 전부인 수입은 불안정했다.

이번 책은 10년간 공을 들여 애착이 강했기에 출간 초반 미미한 반응에 실망이 더 컸다. “통상 출간 1주일, 길게는 한 달 안에 책의 운명이 결정 나거든요.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게, 독자들과 어떤 소통도 못하는 게 속상했죠.”

책이 나온 지 1년 되던 날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 소통에 나섰다. 책의 일부를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직접 만나고 싶다는 독자들도 생겼다. “한 학부모와 만나서는 네 시간 동안 얘기를 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나의 지난 10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 시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죠.”

이 책이 뒤늦게 성공을 거두자 여러 출판사가 그를 찾아왔다. 다음에 낼 책을 계약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는 서두를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다. “우선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본질을 놓치고 있진 않았나 돌아보면서요. 스스로 더 깊어질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영화도 찍었고 작곡도 했습니다. 작가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것에만 매여버리죠. 저는 하나의 사상을 갖고 그걸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