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타도'를 외친 화웨이가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스마트폰 출하량이 크게 줄면서 도리어 삼성전자·애플에 이은 글로벌 3위 자리마저 샤오미에 내줬다. 삼성전자를 잡고 글로벌 스마트폰 1위 사업자로 올라서겠다고 공언한 게 무색해졌다.
24일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크게 감소했다. 특히 화웨이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화웨이는 전월 대비 스마트폰 출하량이 절반 이상 줄어든 550만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대비 70% 급감하면서 2월 출하량 1위 삼성전자(1820만대)의 30% 수준에 그쳤다.
출하량 2위는 애플(1200만대), 3위는 샤오미(600만대)였다. 화웨이는 같은 중국 업체인 샤오미에도 밀려 4위로 내려앉았다.
이같은 화웨이의 부진은 △미국 정부의 계속된 제재 △코로나19 확산 여파 △중국 제조업체들의 하이엔드폰 진출 등 내수경쟁 심화의 '3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화웨이 스마트폰은 점차 매력을 잃고 있다. S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200만대를 판매한 이후 화웨이의 출하량은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미국 정부 제재로 화웨이 스마트폰에 구글 모바일 서비스(GMS)를 탑재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화웨이가 백도어를 통해 중국 정부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며 화웨이를 거래제한기업 명단에 올렸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 허락 없이는 대다수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게 돼 구글 운영체제(OS)와 유튜브 앱 등 GMS 일체에 접근할 수 없다.
올해 들어선 중국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는 스마트폰 시장의 공급뿐 아니라 수요까지 모두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 중국 내 오프라인 매출이 높은 화웨이로선 큰 문제다. 지난해 화웨이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40%를 웃돌았다. SA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 내 수요가 줄어들었다"고 평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으로 번지면서 올해 스마트폰 시장은 한층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주 SK증권 연구원은 "공급 이슈는 생산라인 가동률 회복으로 3~4월 중 해소될 수 있지만 소비심리 악화로 수요 침체 여파는 적어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다.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 성장폭 추정치(전년 대비 최대 -7.1%) 하향이 불가피하다"면서 최대 -11.2%까지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중국 시장에 보다 집중해야 하는 화웨이에게는 내수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점도 골칫거리다.
저가 물량 공세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웠던 샤오미 오포 비포 등은 하이엔드급 스마트폰을 잇따라 출시한다. 화웨이는 그동안 중국 내 하이엔드 스마트폰 판매량 80%가량을 점유해왔다. 때문에 중국 업체들의 하이엔드 시장 진출은 화웨이로선 파이가 크게 줄어드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샤오미 오포 비포가 최근 각각 출시한 플래그십(전략) 'P40 프로' '파인드X2 5G' '넥스3 5G'는 모두 100만원 내외 고가 스마트폰이다.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웨이보에 "하이엔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웨이는 위기 타개를 위해 자체 OS 탑재 신제품 출시를 비롯해 GMS를 대체할 수 있는 자체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기로 했다.
화웨이는 지난달 아웃폴딩 방식 새 폴더블폰 '메이트Xs'를 글로벌 출시했다. 오는 26일에는 새로운 플래그십 'P40' 시리즈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들 폰에는 모두 화웨이가 독자 개발한 OS 'EMU 10' 등이 탑재된다. 아울러 화웨이 자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연동하는 '화웨이 모바일서비스'(HMS)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이러한 대응이 당장 효과를 보긴 어려워 당분간 화웨이는 고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제재를 당하는 것과 관련, 지난해 말 직원들 대상으로 "생존이 최우선 과제다. 2020년은 우리에게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여파에 내수경쟁까지 화웨이를 덮쳤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 내부적으로도 올해 스마트폰 판매 20%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는 전언이 있다"고 귀띔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