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8)] 공동체 정신이 인류 미래 좌우한다

입력 2020-03-23 17:01
수정 2020-03-24 00:22
인간에게는 경쟁과 협력의 양면성이 있다. 이기적 경쟁과 이타적 협력이 인간 본성의 본질이다. 얼핏 보기에 모순되고 대립되는 두 가지 본성이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왔다.

적자생존(適者生存·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였다.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생물체의 생존 기회가 높다”며 생물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1976년 발간한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의 주체는 인간 개체나 종(種)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하다. 가장 효과적으로 복제되기 위해 유전자는 반드시 이기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유전자는 도태된다. 복제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 자연선택은 생존에 유리한 개체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쟁만으로 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진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한다. 예컨대, 일개미는 자기 복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꿀벌은 협업과 분업을 통해 종족을 유지한다. 심지어 박테리아도 협력한다. 끈처럼 연결된 박테리아 세포는 이웃 세포에 질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기도 한다.

협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종은 인류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프리카 조상들이 틀리지 않았음은 실제 자연에서도 증명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수많은 철새가 이동한다.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난 뒤 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수천㎞나 되는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추적장치를 장착해 비결을 밝혀냈다. 철새는 ‘V자’ 내지 ‘기역(ㄱ)자’를 이루며 날아간다. 뒤따르는 새들은 앞서가는 새와는 반대로 날갯짓을 하면서 앞 새의 날갯짓에서 발생한 상승기류를 활용한다. 상승기류 덕분에 에너지의 20%를 절감할 수 있다. 이동할 때 새들은 앞뒤로 0.49~1.49m의 간격을 둔다. 공기역학상 상승기류를 활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거리다.

생명체 중 협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종은 인류다. 인류는 집단지성을 통해 다른 생명체들을 제압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됐다. 협업을 바탕으로 이뤄낸 과학·기술혁명 덕택에 인류문명은 진보를 거듭해 왔다. 오랜 경쟁의 역사를 통해 인류는 문화와 역사는 달라도 공통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고, 경쟁과 협력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원과 가치는 계속 커질 수 있으며,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창조와 혁신이 가능함도 깨달았다. 3000년 전 서로 고립된 50여만 개의 소규모 문화로 산재했던 인류는 오늘날 지구공동체라는 커다란 네트워크를 이뤄 다방면에서 협력하고 있다. 두 번에 걸친 세계 전쟁의 경험과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유엔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메커니즘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논의하고 있다.

대규모 도전엔 연대·협력이 필수적

중국에서 시작돼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제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또 인류의 미래에 많은 과제를 던졌다. 무한한 정보와 기술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세계 질서는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돼 있으며, ‘국경 없는 바이러스’는 지구상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한 일도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고 퇴치를 위한 치료제와 백신을 조기에 개발해 인류의 ‘건강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초월하는 협력이 필수적임을 실감하게 됐다.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 어린이들에게 제안했다. 가장 빨리 달리는 아이에게 싱싱한 딸기 한 바구니를 통째로 주겠다고 했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맞잡은 채 함께 달렸다. 동시에 도착한 그들은 둘러앉아 딸기를 맛있게 나눠 먹었다. 왜 손을 잡고 달렸느냐는 인류학자의 질문에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우분투(Ubuntu).” 우분투는 남아프리카의 반투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면서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의미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핵심으로, 관계와 헌신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보르네오에 있는 프난족 언어에는 ‘고맙다’는 말이 없다. 나눔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인류에게는 세계적 대유행, 대규모의 재난,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수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의심하고 증오하기보다 신뢰하고 나누는 공동체 의식으로 연대할 때 인류는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