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18일(10:5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석유공사가 가지고 있던 해외자산 중 약 4조원어치를 모아 별도 법인을 설립한 뒤 외부 투자를 받는 방안을 추진한다. 매물로 내놨지만 팔리지는 않고, 투자를 유치해서 3000%가 넘는 부채비율을 떨어뜨려 보려는 계산이다.
17일 알리오에 공시된 입찰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지난 10일까지 자원개발자회사(SPC) 설립에 관한 'SPC 투자유치 추진 타당성 자문 용역'(컨설팅) 제안서(RFP)를 투자은행(IB)들로부터 접수했다. 해당 회사에는 영국 다나(DANA)페트롤리엄 지분 100%, 미국 셰일회사 이글포드 지분 일부를 보유한 KNOC이글포드코퍼레이션 지분 100%, KADOC 지분 75% 3개를 현물출자할 테니, 이 SPC에 외부 투자자를 유치할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요청한 것이다.
◆"SPC 지분 49% 팝니다"
석유공사는 입찰제안서에서 올해 중에 투자를 유치해서 내년 중에 SPC 설립을 완료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아울러 이러한 구조를 짠 것은 "공사의 재무건전성 제고"가 목적인 만큼 "SPC에 대한 지배력 유지를 통해 투자유치 금액을 연결회계기준상 공사 자본으로 인정 가능해야 하며", "투자자는 SPC의 장래 사업 기회와 위험을 공유하는 국내법인인 전략적 투자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국내 정유사 등 대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보려는 목적을 밝힌 것이다.
석유공사는 2018년 당기순손실 4781억원, 2019년에는 당기순손실 7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 작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3021%에 달했다. 올해도 유가가 급락한 영향으로 재무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공사는 작년 9월에 내놓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2019~2023년)에서 '우량자산 투자 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작성 시점인 2019년에 8400억원, 2020년엔 1조4000억원 등 총 2조3000억원 수준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제시했다.
석유공사는 이외에 저수익 저효율 자산의 지분을 매각해서 2022년까지 7700억원 가량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주요 매각 대상으로 EP에너지, 캐나다 하베스트(HOC) 등의 비핵심자산을 꼽았다. 다만 해당 물건들은 예전부터 지분 매각을 추진해 왔음에도 여태껏 소득이 없던 것으로, 유가가 급락하고 경기가 얼어붙은 지금은 매각 눈높이를 크게 낮추지 않으면 당분간 실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4조원어치 자산 SPC 이전 계획
이번 SPC 설립 추진은 이 중에서 '우량자산 투자 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석유공사가 SPC에 넘기겠다고 제시한 3개사의 가치는 약 4조원에 달한다.
다나페트롤리엄은 2010년 석유공사가 약 4조원을 들여 적대적 M&A로 인수한 회사로, 장부가격은 현재 2조832억원으로 잡혀 있다. 미국 이글포드는 텍사스주에 있는 셰일가스 광구로, 석유공사가 2011년 아나다코에서 지분 23.67%를 샀으며 이후 이 중 5%를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에 되팔았다. 현 보유지분 18.67%의 취득가액 및 장부가액은 각각 1조5000억원이라고 석유공사는 보고하고 있다. 두 회사의 장부가만 합해도 3조5000억원 선이다.
여기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 광구 유전개발 사업을 하는 주체인 KADOC 지분 75%는 장부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적혀 있으나, 지난해 이미 하루 3만배럴 규모(공사 몫은 하루 9000배럴) 생산을 개시한 만큼 실제는 보다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석유공사가 바라는 대로 SPC에 50% 미만의 지분을 넘겨서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구상이 실제로 작동할 것인가다. 4조원어치 자산을 담은 SPC는 분명 가치가 있지만, 석유공사가 바라는 '그림'은 49% 지분을 팔면서 2조원 이상(목표는 2조3000억원)을 유치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의 전략적 투자자(SI)'여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으면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투자자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진 가운데 대량의 현금을 들고 석유공사가 요구하는 값을 내줄 투자자가 나설지는 미지수다.
높은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도 아니다. SPC 이전 대상으로 꼽힌 3개사 중 다나페트롤리엄의 경우 장부가는 비싸지만 2018년 한 해 이익은 1억1775만파운드(약 1800억원)에 그쳤다. 공사는 작년에도 다나페트롤리엄 지분 30%를 매각하려 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글포드는 2018년 1억3965만달러(약 1700억원) 이익을 올렸다. 지분율을 감안하면 공사 몫의 이익은 35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글포드의 산유량은 하루 약 130만배럴 수준이다.
지난해 아부다비에서 생산을 시작한 KADOC의 경우 향후 산유량이 늘어나겠지만, 당장 돈을 버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생산을 늘리기 위해 추가 투자 등이 필요한 상황으로 추정된다.
◆UAE ADNOC 온쇼어 사업도 넘길 가능성
석유공사도 투자자들이 이 정도로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일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석유공사는 해당 RFP에 "UAE 국영석유사가 운영권을 가진 ADNOC 온쇼어(육상광구) 사업 등 공사 참여 유망 신규사업 추가 출자 가능성 검토 중"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제시한 3개 자산이 투자자의 입맛에 부족하다면, 추가로 알짜 자산을 더 내놓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제안서를 받은 IB들의 반응은 아직 냉랭하다. 석유공사가 지난 10일까지 진행한 자문용역 입찰에는 기준에 맞는 제안서가 들어오지 않아 유찰됐다. 4조원어치 자산을 넣는 SPC 설립 및 적절한 투자 유치 계획을 요구하면서 글로벌 IB들을 상대로 1억7000만원대 낮은 용역비를 제시한 것이 1차 원인으로 보인다. 한 IB 관계자는 "용역을 수주하는 것이 향후 매각 자문을 수주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다들 이 조건으로는 들어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