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서양인이면서도 한복을 무척 사랑했다. 은은한 보라색과 와인색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었고, 화려한 자수나 장식이 없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해서 옷고름 대신 간단한 브로치를 썼다. 집안일을 할 때는 치마 길이를 짧게 한 생활한복을 선호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한복을 처음 입어본 것은 신혼시절인 1935년이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와 25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이듬해, 미국 순회 도중 윤치영 씨(훗날 초대 내무부 장관) 부인으로부터 한복을 선물로 받았다. 그때 한복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뒤 거의 평생 ‘한복 패션’을 즐겼다.
1992년 타계했을 때도 연보랏빛 수의를 입고 떠났다. 프란체스카의 한복을 자주 지어준 한국 최초의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씨가 ‘목숨 수(壽)’자를 수놓아 특별히 제작한 옷이었다. 이리자 씨는 당시 “보라색을 좋아하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위해 보라색 비단으로 미리 수의를 지어 놓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순자 이희호 권양숙 여사 등도 내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었지만 가장 많이 입은 분은 프란체스카 여사였다”고 말했다. 프란체스카는 우연히 만난 오스트리아인이 “오스트리아 사람인가요?”라고 묻자 “난 한국 사람입니다. 우연히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을 뿐이죠”라고 답할 만큼 한국과 한복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헤어스타일도 한복에 맞게 ‘쪽진 머리’를 했다.
12년 동안 남편의 독립운동을 돕고, 12년 동안 대통령 부인으로 내조했고, 22년간 남편 없는 땅에서 살다간 ‘파란 눈의 한국인’. 그가 입던 한복을 이씨는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 한복특별전’에 선보였다. 민속박물관에도 다른 대통령 부인들의 옷과 함께 기증했다.
이씨가 만든 한복은 ‘영부인 패션’뿐만 아니라 ‘코리아 패션’ ‘한류 패션’으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해외에서만 100차례 이상 한복 패션쇼를 열었다. 그런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씨가 어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6대 독자 남편이 지어준 한국 이름 이부란(李富蘭·프란체스카)과 5대 독자 아버지가 외동딸에게 지어준 본명 이은임(李殷姙·이리자). 두 사람이 앞으로 ‘하늘의 융단’을 펼치며 나눌 이야기 속에서는 어떤 색깔의 꽃이 피어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