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가동한 비상체제를 장기전으로 전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임직원의 안전과 국내 사업장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방지 등으로 대응하던 주요 대기업들이 유럽과 미주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대응 시스템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현대·기아차 생산공장이 줄줄이 멈춰선데 이어 현대차 인도공장도 '셧다운'됐다.
지난 18일(미국 현지시간)에는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또 현대차와 기아차는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직원들의 안전과 국경 폐쇄로 인한 물류 영향을 고려해 유럽 공장 역시 가동을 2주간 중단키로 했다.
미국 공장은 오는 31일까지 가동이 중단되며, 유럽 생산재개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현대차 인도법인 역시 23일부터 생산을 중단했다.
이는 인도 자동차제조업협회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직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 중단을 권고하고, 인도 타밀나두 주정부가 가동 중단을 명령한데 따른 것이다.
현대차의 해외생산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것도 있지만 글로벌 부품 공급망을 활용하는 특성상 부품부족으로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의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은 연산 40만대 규모로, 아반떼·쏘나타·싼타페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2900여명의 풀타임 직원과 500여명의 파트타임 직원이 일하고 있다. 기아차 조지아공장은 연산 27만4000대로, 인기차종인 텔루라이드를 비롯해 K5, 쏘렌토 등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유럽의 현대차 체코공장,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의 생산규모는 각각 연산 33만대 수준이다. 현대차 인도 첸나이 1, 2 공장은 연산 70만대, 기아차 아난타푸르 공장은 연산 30만대 규모다.
현대차가 재택근무에서 정상 출근을 포함한 유연근무체제로 비상대응하자 다른 기업들도 재택근무 종료시점을 두고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사업장 안전을 중심에 뒀던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의 역할을 해외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글로벌 경제위기 가능성까지 염두해 수요 감소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가동했다.
확산세가 멈춘 중국의 반도체 공장은 이상없이 가동 중이지만, 베트남과 인도의 스마트폰 생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 정부의 강력한 대응 기조에 따라 현지 글로벌 공장들의 셧다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TV를 생산하는 슬로바키아 공장은 23일부터 29일까지 가동을 멈춘다. 해당 공장의 생산 부족분은 정상 가동중인 헝가리 TV 공장에서 대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9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방문해 디스플레이 사업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은 "잠시도 멈춰선 안 된다. 위기 이후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코로나19 위기 대응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동력 육성을 강조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3일 경북 구미사업장을 찾아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점검하는 등 2주 동안 두 차례 현장경영에 나섰다.
SK그룹은 핵심 계열사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위기 경영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이번 주 초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그룹경영 회의를 열고 전반적인 경영현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LG전자는 폴란드에 브로츠와프 냉장고 공장과 므와바 TV 공장, 미국에 테네시 세탁기 공장, 알리바마 헌츠빌 태양광 패널 공장, 미시간 헤이즐파크에 전기차 부품 공장 등을 운영한다. 아직까지는 사업장 폐쇄 조치 등의 문제 없이 정상가동 중이다.
LG전자는 국내뿐 아니라 코로나19 확산세가 강한 미국과 유럽 일부 법인 직원들에 대해 재택근무를 실시중이며,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임직원에는 출장을 금지했다.
아울러 주요 기업들은 CP(기업어음)와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경색 우려가 나와 자금상황도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20일 국내 증권사들과 함께 CP시장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정부 역시 지난 19일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