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없다."
최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선 이같은 인식이 퍼지고 있다. 경기침체를 동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의 채용공고가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토익·텝스 등 스펙용 자격증 시험과 오프라인 채용설명회가 모두 취소되면서 입사 지원은 커녕 취업 준비마저 불가능한 유례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채용 자체가 없다"
연세대 재학생인 강모씨(26)는 지난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했지만 졸업을 유예했다. 작년에 원하는 직종에 취업하지 못해 '취업재수'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대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채용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예년보다 취업이 훨씬 힘들어졌다는 게 강씨 설명이다. 강씨는 "매년 3월 초에 시작되던 대규모 상반기 공채가 올해엔 아예 씨가 말랐다"며 "취업공고 자체가 올라오지 않으니 정보 자체도 없고, 취업 그룹 스터디도 불가능해 대학생 신분을 유지한 결정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고 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8개 그룹이 코로나19를 이유로 3월로 예정된 채용일정을 연기하거나 연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그룹이 상반기 채용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삼성과 LG, 현대자동차그룹은 채용 연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GS 신세계 한화도 채용일정 변경 여부에 대해 '미정'이라고 답하면서 일정 변경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 3월에 상반기 모집을 실시한 곳은 롯데와 포스코 두 곳뿐이다.
취업 공부조차 못하는 현실
취업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 취업준비생(취준생)이 유독 더 힘든 이유는 '취업 준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취준생의 대표적인 어학 스펙인 '토익'은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지난 2월 29일 시험부터 이달 29일에 예정된 시험까지 모두 3회의 시험이 취소됐다.
서울의 한 취준생 현모씨(26)는 "기존에 갖고 있던 토익 점수 유효기간이 만료돼 2월부터 시험을 치르려 했었다"며 "만약 이대로 한 곳이라도 (주요 기업) 공채가 뜨면 지원 자격조차 못 갖추게 된다"고 우려했다.
4월로 예정된 두 번의 토익 시험도 다급한 응시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20일 기준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모든 고사장의 예약접수가 이미 마감됐다. 현씨는 "혹시나 한명이라도 취소하지 않을까 계속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있다"며 "공부가 아니라 새로고침 버튼을 클릭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했다.
매년 이맘때 대학 캠퍼스에서 이뤄지던 채용설명회까지 사라지면서 취준생들의 불안감과 무력감은 더 커져가고 있다. 그동안 채용설명회는 취준생들에겐 기업의 정보를 얻고 현장에서의 특별채용도 노릴 수 있어 하나의 '취업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학들의 개강이 늦춰진 데다 개강 이후에도 온라인 수업이 이뤄지면서 오프라인 채용설명회는 개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기업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방식의 '언택트 채용설명회'를 도입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설명회만큼 긴밀한 정보공유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無)채용에 무자격증시험, 무설명회까지. 취준생 사이에서 "상반기 채용은 물건너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