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도 대출 서류를 집으로 싸 들고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18일 기업은행 노조가 낸 보도 자료의 한 부분이다. 노조는 이날 “코로나19 사태 이후 위법한 시간외 근로를 묵인했다”며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서울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 은행장이 고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출 업무 폭증이 노사 갈등에 불을 붙였다. 중기·자영업자들이 저리의 정부 보증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노조 측은 “영업점은 하루 수십 건에서 많게는 100여 건의 코로나19 관련 대출 업무를 처리하느라 근무시간을 넘기기 일쑤”라며 “그런데도 은행은 기존 이익 목표에 한 치의 조정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업은행 측은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코로나19 특별 대출상품의 신규와 기간 연장 절차를 간소화했다”며 “영업점 경영평가 목표도 상반기 대비 15% 감축(13개 지표)했다”고 해명했다.
은행권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업무 부담이 늘었다고 은행장을 고발한 것은 노조의 이기적인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다. 근본적으로는 융통성 없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이 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은 다른 업권보다 빠르게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다. 한 시중은행 소호 여신담당 직원은 “대출 대기자와 보증기관 전화가 수도 없이 밀려들어 다른 업무는 쳐다보기도 힘들다”며 “한시적으로라도 근로시간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증기관 상황은 더 심각하다. 모든 은행에 대출 보증서를 내줘야 하지만 직원 수는 은행보다 훨씬 적다. 한 은행 관계자는 “보증기관 업무 적체가 심각하다”며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으니 대출 절차가 계속 지연되는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속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일을 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게 묶어놓고 속도만 내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국가 비상사태에 은행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부른 해프닝”이라며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는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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