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표현의 순간

입력 2020-03-20 16:29


[박찬 기자] 우리는 런웨이 위의 모델을 보면서 그 브랜드의 매력을 느끼며 트렌드를 파악한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각자의 실험을 정의하고 있는 곳, 런웨이. 그 기원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의견은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쿠튀르 살롱(Couture Salon)’에서 시작됐다는 것. 또 다른 주장으로는 14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등지에서 마네킹에 의상을 입혀 대중들에게 선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패션은 사회적 산물이다. 위대한 작품을 낳는 모든 기술과 아이디어는 사회적으로 생산된다. 극적인 결과물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기술력과 표현 방법이 필요한 것. 이에 디자이너는 그 표현 방법의 하나로 ‘런웨이 무대’를 택했다. 디자인 팀, 관리자들, 재무 담당자들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막대한 투자 속에 런웨이 무대는 발전해갔다.

일례로 이번 2020년 프랑스 그랑 팔레와 방돔 광장에서 만난 ‘샤넬(Chanel)’ 컬렉션은 더욱더 빛난다.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가 준비한 소녀적인 감수성과 꽃 자수는 샤넬의 비밀스러운 향기를 보여주며 시그니처인 트위드 스커트 수트와 스트라이프 패턴 미니드레스는 여태껏 무겁게 느껴졌던 브랜드 이미지를 강렬하게 끌어왔다. 의상의 디테일과 디자인도 특별했지만 가장 유니크하게 느껴진 요소는 무엇보다도 런웨이 장소였다.



‘비밀 정원’을 연상케 하는 ‘오바진(Aubazine)’ 수도원은 소박하면서도 엄숙한 장소.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며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인 만큼 컬렉션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증명해냈다. 이처럼 런웨이 무대가 어느 곳으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컬렉션에 서는 모델과 디자이너 모두 표현하는 바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 런웨이 장소와 주제는 패션 문화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수십 년 동안 고집하던 T자형 형태의 무대에서 다각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패션계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스스럼없이 날갯짓하고 있다. 단순하게 의상을 보여준다는 개념에서 하나의 콘텐츠로 나아간 모습이다. 패션 아이템을 해외에 론칭하는 수준을 넘어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담긴 콘셉트, 음악 그리고 조명 등으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컬렉션 런웨이가 어떤 방식으로 시대적 질감을 바꾸고 있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상업성과 예술성 그 사이에서]



유행과 도발을 넘나드는 ‘베트멍(Vetments)’은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듯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바질리아(Demna Gvasalia)’는 샹젤리제에 있는 ‘맥도날드(McDonald 's)’ 지점에서 2020년 봄, 여름 컬렉션 쇼를 열었다. 평소에 맥도날드에 대해서 ‘패스트푸드의 교과서’, ‘미국 사회의 상업적 아이콘’으로 여겨왔던 만큼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장소였다.

신비주의와 해체주의를 반쯤 섞은 ‘안티컨포미즘(Anticonformisme)’으로 아이덴티티를 표출했던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런웨이를 그려나갔다. 노란색 엠블럼의 라벨은 어두컴컴한 쇼와 대조되는 배경으로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 날 컬렉션에 방문한 관객들에게는 브랜드 명을 마구 휘갈겨 쓴 필체의 패스트푸드 컵에 음료를 제공했고, 쇼에 관한 정보는 냅킨으로 명시되었다. 자본주의적 이미지를 쇼 곳곳에 내재시킨 셈이다. 비싼 컬렉션 웨어와 값싼 빅맥 햄버거의 만남은 관객들에게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Sony PlayStation)’ 로고는 ‘공중전화 박스(PayStation)’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는 ‘약물’을 의미하는 ‘엑스터시(Ecstacy)’로 패러디했다. 상업적 아이콘이었던 여러 아이콘이 그들만의 우스꽝스러운 로고로 형상화된 것.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규범과 절차를 뒤집어버리고 센슈얼한 런웨이를 선보인 그들이었다.

[서브컬처와의 조우]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컬렉션 런웨이의 파괴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이전부터 유스 컬처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아트 워크 같은 그래픽 소재를 통해 하이 패션 트렌드를 연구하고 꿈꿔온 그. 스트리트 웨어와 레디 투 웨어 양쪽에서 움직이는 그가 이번 컬렉션에도 눈길을 끌게 했다.

2020년 봄, 여름 컬렉션에서의 그들은 열정적이면서도 분명하다. 실험실에서 볼 수 있는 아우터나 보호 장갑, 부츠 등 유니크한 요소에 귀 기울여 유년기 속 영감을 표현했다. 새롭게 맞이한 그들만의 실험실은 독특하면서도 당당했다. 큼지막한 카라리스 재킷은 의복의 합리성을 처참히 깨부수었고 10개 가까이 되는 링 액세서리를 부착한 가방으로 영 캐주얼적인 디테일도 담아내었다.

‘RS-LAB’이라는 이름의 컬렉션 무대는 다소 어둡고 빛바랜 느낌이다. 그러나 이름 자체로 무거운 의미이자 소수적인 집단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화려하면서도 독점적인 이야기를 런웨이와 함께 표현해 낸 것. 젊은 누군가가 무엇을 만드는지, 어떤 결과물을 원하는지 놀랍게도 배경 하나로 이어주고 있으며 밴드 음악과 조명, 배경으로 그 감정을 마무리한다.

[클래식을 회고하며]



2020년 여름, ‘킴 존스(Kim Jones)’는 ‘디올 옴므(Dior Homme)’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첫 번째 다짐을 이룩했다. 과거의 꿈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런웨이에 ‘클래식’이라는 오마주를 그려 넣었다. 그간 퓨처리즘에 등을 돌렸던 디올이 고전주의적 초상을 포착하게 된 것. 물론 추억은 단순한 ‘이미지’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 컬렉션은 미국 출신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과의 협업 작품으로 조각술에서 빌린 기법으로 비주얼 디렉팅을 이끌어냈다. 가볍고 구조적으로도 화려한 실루엣이 특징인 것. 현대 고고학과의 만남이 잦은 아샴은 디올의 헤리티지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 과거가 어떤 시간을 걸었는지 런웨이로 선보였다. 20년 전 오뜨 꾸뛰르를 장식했던 뉴스페이퍼 프린트가 새롭게 표현됐으며 새들백은 3D 프린트 장식으로 주조되었다.

온통 분홍색으로 물든 조각상 거리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사막의 위태로움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금 더 세밀한 부분으로 말하자면 쇼 입구 위에 가짜 시계가 깨져서 부서져 있다. 50년대의 디올 사무실에 걸려 있던 그 모습 그대로를 재현한 것. 70년이 지난 현대 사회 속에서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재해석하고, 지금의 런웨이에서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 되물었던 그였다. (사진출처: 샤넬, 베트멍, 라프 시몬스, 디올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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